국사/조선

태조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15. 10. 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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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 그는 누구인가?


고려말 조선초를 주제로 한 작품이 해마다 쏟아져 나오면서 극의 중심인물인 태조 이성계의 측근들도 꾸준히 입에 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성계의 의형제이자 심복인 이지란은 항상 이성계 옆에서 묵묵히 보필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이지란 그는 과연 누구일까?


<이지란 초상화>

|이지란의 출생


1331년 태어난 이지란의 본래 이름은 퉁고륜두란첨목아 줄여서 퉁두란으로 당시 고려 북방의 여진족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지란이 나온 이 건주여진족이 급성장해서 약 300년후 누르하치의 청제국을 탄생시키는 만주족이 된다. 여튼 이지란이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한 것은 그가 마흔살 때인 1371년 공민왕 때로 부하들을 이끌고 고려에 귀화를 신청하면서부터이다.


<이지란>

|이지란 이성계를 만나다.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고려의 북방인 북청땅에 머물던 이지란은 이성계의 백발백중의 신궁 실력을 듣고 찾아갔다가 그대로 휘하로 들어가 의형제가 되었고 당시 이민족들의 침입으로 소란스러웠던 수많은 동북면 전투에서 공을 세워 본관인 청해와 이씨의 성을 하사 받아 청해 이씨의 시조가 된다.


1380년 우왕 6년 고려군을 떨게한 맹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의 대대적인 침입을 막기 위해 이성계가 삼도절제사로 임명받아 떠나게 되었을 때 이성계의 부장으로 참전 이성계를 도와 왜구를 완벽하게 무찔렀으며(황산대첩) 이로 인해 이성계가 고려 전체에 이름을 더욱 알리게 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이후 1388년 이성계가 모든 권력을 쟁취한 위화도 회군 당시 이를 도와 실세가 되었고 1392년 마침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개국공신 1등에 책봉 되었으나 이에 안주하지 않고 왜구와 북방 오랑캐들을 막는데 힘을 쓴다.


<용의 눈물 이지란>

|이지란의 이후 행보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킬 때 이지란은 이방원의 편에서 공을 세워 공신에 봉해지고 2차 왕자의 난에서도 공을 세우며 다시 한 번 공신에 봉해지는 등 태조의 의형제이자 조선 초 혼란스러웠던 상황에서도 나름 안정되게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간다. 


그리고 1400년 이방원이 즉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이성계가 있었던 함흥으로 돌아가 이성계를 시종하며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동시에 자신이 전쟁중 죽인 모든 사람들에게 속죄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죽은 후 이성계의 사당에 함께 모셔졌다.


이지란은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의 친정 조카딸인 강씨를 두번째 부인으로 두었으며 

이성계와 의형제이자 처조카사위가 되는 나름 복잡한 관계 였고 실세 였지만 행보로 볼 때 권력 욕심은 거의 없이 오직 이성계와 나라를 위해서 살았던 것 같다. 그의 묘지는 함경남도 북청군 신북청읍에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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