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 시아파 차이 무엇이 다른가?
IS 문제로 전 세계가 골치를 썪는 사이 자주 등장하는 이슬람의 두가지 종파가 있다. 바로 수니파와 시아파인데 그들의 역사적 기원은 어떻게 되며 어떤 것이 다른 것이기에 이토록 치고 박고 싸우고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일까?
<수니파와 시아파를 나누게 된 역사적 사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역사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추종하는 마호메트는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632년에 죽었다. 그래서 당시 아랍의 무슬림들은 아랍 부족의 전통 방식에 따라 민주적인 만장일치 제도로 후계자를 선출했다. 바로 이렇게 선출된 후계자가 세속 군주의 절대 통치권을 가진 동양의 황제와 같은 칼리파였다.
뒤를 이어 2대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이 차례로 칼리파가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무함마드의 유일한 부계 혈통이자 그의 사촌동생 그리고 사위인 알리는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때문에 당시 알리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차별을 견뎌 내야 했는데 656년 마침내 알리가 네 번째 칼리프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661년에 암살을 당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언자이자 이슬람 세력을 결집시킨 유일한 직계 혈통이었던 알리가 네번째 칼리파가 된것도 이상한데 거기다 암살까지 당해버렸으니 알리의 추종자들은 적개심과 분노를 가지고 이슬람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는데 그들이 바로 '시아파'가 되었다. 바로 시아파의 '시아'란 뜻은 떨어져 나간 무리라는 뜻이다.
<이슬람은 수니파가 다수이다.>
<제 4대 칼리파 알리>
|이맘제도의 차이
시아파들은 12이맘파의 기본논리를 앞세운다. 12대 이맘 무함마드 알-문타자르가 873년 죽지 않고 은둔하였다는 점과 그가 메시아인 마흐디로 다시 등장할 것이라 믿는다. 시아파는 12대 이맘이 마흐디로 재림할 것이며 이슬람 시아의 정의와 평등, 단합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수니파 역시 마흐디는 인정하나 인류 최후 심판의 날에 등장하며 시아파의 이맘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슬람 법학의 차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점은 이슬람 법학인 피끄흐에 관한 것이다. 수니파는 하나피파, 한발리파, 말리키파, 샤피이파 등 정통 4대 법학파를 인정한 반면, 시아파는 오직 6대 이맘 자파르 알 사디끄가 편집하고 성문화한 자으파르 법전만을 인정한다.
|결혼, 이혼, 상속에 관한 차이
시아파의 이란 중심의 12대 이맘파는 일시적 결혼인 무트아(일정한 조건을 통해 합의하는 계약결혼)를 인정한 반면 수니파는 결혼의 기간을 정해 놓는 계약 결혼을 죄악으로 간주하였다. 또한 시아파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이혼 권리를 수니파보다 제한적으로 운영하였으며 여성의 상속권을 수니파의 법전보다 관대하고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
|종교적 관행 타끼야 관행
수니파와 시아파는 종교적 관행 중 특징적인 차이점은 바로 타끼야 관행이다. 정치, 종교, 이념적 믿음을 숨길 수있도록 하는 타끼야 관행은 시아파의 경우 적대 세력의 탄압과 억압을 피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수니파는 이러한 관행을 받아드리지 않고 있는데 시아는 이슬람 역사 동안 자신들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종종 대응 수단으로 사용해 오곤 했다.
<카르발라 전투>
|종교 의식의 차이
시아파는 수니파보다 훨씬 많은 종교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수니파의 원리주의자들은 시아파의 이맘 성인 숭배 사상과 의식을 비난하였는데 시아파는 예언자 무함마드 가문 출신들에 대한 숭배의식과 이라크, 이란, 시리아의 성인 묘소 참배 순례 의식들이 포함되었다. 또한 이란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칼리파 알리 그의 아들인 이맘 후세인의 카르발라 전투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맘 후세인은 알리의 아들로 680년 카르발라 전투에서 아랍의 우마이야 왕조에게 패하여 살해 당했는데 그의 무참한 죽음으로 시아파는 단단해졌지만 수니파들은 이 같은 카르발라 전투에 대한 예배 의식은 하지 않는다.
|예배의식의 차이
수니파는 하루에 5번 예배를 행하지만 시아파는 하루 5의 예배를 세차례로 나누어 드릴 수 있도록 허용한다. 또한 수니파는 예배 때 두 팔을 앞으로 포개는 반면 시아파는 두팔을 포개지 않고 밑으로 내려 뜨린다.
종교축제에서도 수니파는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조 칼리파 야지드에게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순교 당한 날인 무하람을 이슬람력의 첫 번째 달로 기념한다. 그러나 시아 12이맘파는 당시 후세인의 도움 요청을 거부하고 그를 구출하지 못한 것을 참회하며 가슴을 후려치는 의식과 자기 채찍 의식을 통해 무하람 10일을 최고 애도일로 간주한다.
여튼 시아파는 좀 더 강렬한 종교의식을 통해 무슬림과 비무슬림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주며 시아파 역시 이런 참회 의식을 통해 이맘 후세인이 최후 심판날에 중재자로 등장하여 자신들을 천국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수니파는 시아파의 알리와 후세인에 대한 그릇된 종교 의식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저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실 수니파와 시아파는 궁극적으로 믿음에 대한 교리를 공유하고 있고 결혼은 물론 상대방 모스크에서도 예배를 볼 정도로 다른 사이가 아니다.
특히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분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의 갈등은 오히려 정치적, 경제적 이권에 대한 성격이 강하며 두 종파 간의 이질감은 심각하지 않다. 물론 두 파의 과격 단체나 원리 주의자들에 대한 모습이 부각 되면서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궁극적으로는 화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슬람의 메시지를 잊지 않을 것이라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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