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고려

고려의 개국공신 파평 윤씨 시조 윤신달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19. 9. 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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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개국공신 파평 윤씨 시조 윤신달 그는 누구인가?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파평 윤씨는 우리 역사속에서 많은 인재와 명문가문중 하나로써 그 이름을 떨쳤다. 때문에 파평윤씨의 시조가 누구인지? 또 파평윤씨의 시조는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도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파평윤씨의 시조 윤신달 그는 과연 누구일까?

 

태조왕건에서 등장하는 윤신달

 |파평윤씨 윤신달 탄생설화

웬만한 명문가 시조들은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탄생설화가 있듯이 윤신달 역시 그 탄생설화가 있다. 

 

- 탄생설화

신라 진성왕 시절 지금의 경기도 파평(파주)에 있는 용연이라는 연못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나더니 이윽고 천둥과 벼락이 쳤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그 두려움에 제사를 사흘 내내 지내는데 때마침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가운데에 찬란한 금궤를 발견하고는 건져 열어봤다. 

 

금궤 안에는한 아이가 누워 있었는데 아이의 어깨에는 붉은색 사마귀가 돋았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무려 81개의 잉어 비늘이 나있었다. 여기에 발에는 영롱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나 그 모습이 신비했다.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둬 자신이 키웠는데 이 할머니의 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윤신달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 파평윤씨는 잉어를 안 먹는다?

탄생설화에서 윤신달의 겨드랑이에 돋아난 잉어 비늘 때문에 파평윤씨는 잉어의 자손이라고 불리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고려의 명장이자 윤신달의 5대손인 윤관 장군은 거란군에게 포위되어 위험에 빠졌는데 탈출로였던 강가에 도착했을 때 잉어떼가 그 길을 인도하여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파평윤씨는 시조이자 자신의 조상들을 도와준 잉어를 고맙게 여겨 잉어를 먹지 않는 풍습이 전해진다고 한다. 

윤신달의 고손 윤관 장군

|파평윤씨 윤신달의 고려조 활약

사실 시조 윤신달에 대한 역사 기록은 그 탄생설화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을 왕위에 세우고 그를 도와 삼한을 통일하는데 앞장섰으며 통합삼한벽상익찬공신 삼중대광태사라는 길고도 중요한 공신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개국공신 2등에 12명 중 한 명으로 함께 공신으로 임명된 사람들은 유금필, 김선평, 장길, 유차달 등이 있다.

 

삼국을 통일한 후 경주 동부도독으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때문에 그의 묘는 지금 포항시 기계면에 자리잡고 있다.

 

- 시조는 윤신달이지만 파평윤씨는 윤관으로부터 나온다. 

사실 파평윤씨의 시조가 윤신달이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유명한 자손이 있으니 바로 5대손 윤관장군이다. 여진족을 평정하고 동북 9성을 개척한 장군으로 고려조를 대표하는 위인이다. 

 

시조 윤신달의 묘를 선택할 때 당시 풍수를 보던 인물이 "4대가 지나야 파평윤씨의 가문이 일어설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파평윤씨는 5세손 윤관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윤관은 윤신달로 이어지는 5대 독자로써 윤관이 곧 시조라 해도 다를 것이 없다.  여기에 윤관은 여진족을 평정한 공로로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문하시중 자리에 올랐으며 그때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삼았다고 한다.

 

- 파평윤씨 가문은 명문가였다. 

파평윤씨는 고려조때도 권문세족 안에 손꼽히는 가문이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그 빛을 더 발한다. 유난히 왕비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과거급제자 고급관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나라를 말아먹긴 했지만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 중기는 파평윤씨들의 세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세가 극에 달했을 정도였다. 

또한 지금의 파주라는 이름 역시 파평윤씨에 의해 지어졌는데 조선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이후 세조비였던 파평 윤씨 정희왕후가 자신의 고향인 원평도호부를 본관인 '파'자를 붙여 파주목으로 승격시키면서 파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금강산이라는 이름 역시 파평윤씨에 의해 지어졌다는 소문이 있다. 윤신달의 손자이자 윤관의 조부인 윤금강이라는 인물이 당시 풍악산이나 개골산으로 불렸던
금강산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그러자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로 윤금강이 그 산에 주인이니 그때부터 금강산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그 여부를 알 수 없으나 파평윤씨의 입김이 많은 사람들에게 떠돌았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내용이다. 


윤신달을 소개하려다가 파평윤씨 가문을 더 소개하긴 했으나 그만큼 파평윤씨에 관련한 재미있는 설화나 이야기를 가진 가문도 적을 것 같다. 앞으로도 잉어의 후손들이라 불리는 파평윤씨 가문의 행보를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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