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자신의 동생들을 지키려 이방원에게 칼을 빼들다! 경순공주와 남편 이제

윤여시 2021. 9. 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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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동생들을 지키려 이방원에게 칼을 빼들다! 경순공주와 남편 이제

정말 많은 사극으로 만들어진 여말선초에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보다 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그의 다섯번째 아들인 태종 이방원이다.

 

이성계의 정비인 신의왕후 한씨의 아들 이방원은 자신을 제치고 세자자리에 오른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 이방석, 이방번 형제를 무참히 살해했고 정도전을 죽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차 왕자의난이다.

 

그리고 여기,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공주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경순공주와 남편 이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인 경신공주, 경선공주와 헷갈릴 수 있다..

|경순공주와 이제의 결혼

 

경순공주는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 사이에 태어난 공주로 이방석, 이방번의 동생이다. 신의왕후 한씨의 이방원과는 이복 여동생이라 할 수 있겠다. 언제 태어났는지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신의왕후 한씨의 경신공주, 경선공주 보다는 어린 막내딸로 알려져 있다.

 

언제 결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후기 권신 이인임의 동생 이인립의 아들 이제와 결혼하여 출가 했다. 여기서, 이인립은 고려말 권력을 잡고 흔들었던 형 이인임에게 여러번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충고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용의눈물 중 경순공주

|제1차 왕자의난과 이제의 죽음

 

1392년, 4월 이방원과 함께 정몽주를 죽이는 일에 참여하여 모의했으며 1392년 7월,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조선이 세워진 후 흥안군에 봉해져 의흥친군위절제사가 되었다. 이후 8월에는 개국공신이 되었으며 1393년에는 남은, 이지란과 함께 왜군을 막으러 경상도에 파견되었다가 10월에는 우군 절제사 자리에 오른다. 그 세와 권력이 막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1398년 이방원의 제1차 왕자의난이 일어나면서 이제는 이방원의 적에서서 이성계에게 칼을 들고 싸우도록 허락을 구했으나 이미 이방원 일파의 내부 교란으로 인해 칼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패배한다. 그가 죽기 전 아내 경순공주가 이방원에게 투항하라 전했지만 이제는 끝까지 머리를 굽히지 않았다가 처형당한다.

용의눈물 경순공주 삭발장면

|경순공주 비구니가 되다

 

자신의 오빠들과 남편 이제가 무참히 참살당하고 경순공주는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조선왕조 최초로 출가한 왕족이 바로 경순공주이다. 경순공주를 아꼈던 이방원이 신덕왕후 강씨 소생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경순공주를 직접 머리를 깎아 출가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순공주는 동대문 밖의 정업원인 청룡사에 출가하게 되는데, 청룡사에는 공민왕의 제 2비였던 혜비가 이미 삭발을 하고 비구니의 생을 살고 있었다. (여기서 정업원은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 한양 궁성 내에 존재했던 비구니 처소이다)

고려의 멸망 후 비구니가 된 혜비, 조선을 세운 왕의 공주였지만 비구니가 된 경순공주가 함께 지내는 모습만 봐도 참으로 역사적인 아이러니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자신의 올케인 의안대군 방석의 부인 현빈심씨도 출가하여 청룡사에서 함께 지냈다고 전해진다.

 

 

영화 순수의시대에 등장한 경순공주

|경순공주의 죽음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숭유억불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도성에 가까운 사찰들은 폐쇄를 했지만 유독 정업원은 그대로 놔두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누이 경순공주에 대한 이방원의 마음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었겠는가 추측된다. 


하지만 경순공주는 비구니 생활을 한지 10년도 채 안된 1407년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이성계의 공주 3명 모두가 태어난 해가 기록되어 있지않아 몇살에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여성들이 16살 전후로 결혼을 한다고 가정 했을 때 1372년쯤 태어났고 이 계산이 맞다면 그녀의 나이는 35살쯤 되는 젊은 나이였다.

 

그녀가 죽자 이방원은 조문을 갔다고 전해지며 세종이 즉위하고는 그의 남편 이제가 신원 되었으며 조카인 이윤으로 대를 잇게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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