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가장 극렬한 반대를 했던 정여 홍인한 그는 누구인가?정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가장 극렬한 반대를 했던 정여 홍인한 그는 누구인가?

Posted at 2021. 9. 26. 23:33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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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가장 극렬한 반대를 했던 정여 홍인한 그는 누구인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할 정도로 반대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대했던 인물은 바로 혜경궁 홍씨의 작은 외삼촌이자 정조의 작은 외할아버지가 되는 홍인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홍인한 그는 누구일까?

홍인한

|홍인한의 출생과 집안 배경 그리고 관직생활

선조의 6대손이며 정명공주와 그남편 홍주원의 5대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홍현보이며 혜경궁홍씨의 아버지였던 홍봉한의 이복동생이다. 따라서 당시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가 되는 혜경궁홍씨의 작은 아버지가 된다. 그야말로 당대의 세도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음서를 통해 관직에 오른 후 1753년 무과에 급제했다. 관직에 오르자마자 가문의 배경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 했다. 이후 1754년 파직되었다가 1757년 전라감사로 부임했다. 이후 호조참판, 예조참판, 도승지와 경기도 관찰사, 공조, 이조, 병조 등의 판서들을 모두 지내고 우의정과 좌의정이 되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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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한의 전라감사 시절 만행

홍인한이 전라감사에 재직할 때에 그는 기생들의 춤과 노래를 트집잡아 곤장을 때렸다고 전해진다.

이는 조선 후기 문신 성대중이 집필한 <청성잡기>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인데, 옆 뜰에는 항상 곤장이나 고문기구들이 즐비해있고 기생이 노래, 춤, 악기를 할 때 꼭 트집을 잡아 고문과 곤장을 가했다고 전해진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 심했냐면 성대중은 중국 후조시대 살인마였던 태자 석수와 비교했다.

태자 석수는 예쁜 궁녀의 목을 잘라 접시 위에 놓고 몸은 요리하여 먹었다는 그야말로 잔혹무도한 살인마인데 석수와 비교해서 기록해 놓은걸 보면 홍인한이 얼마나 잔인한 인물이었는가 추측해볼 수 있다.

드라마&lt;이산&gt;에서 홍인한

|홍인한, 정후겸과 연합하여 정조를 위협하다

홍봉한은 정순왕후 김씨를 뒤에두고 경주김씨 김귀주 등의 힘이 커지자 동맹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경주김씨 김귀주, 풍산홍씨이자 자신의 이복형인 홍봉한의 치열한 세력싸움이 시작되면서 그 힘이 약화된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영조의 딸 화완옹주의 양자이면서 실세였던 정후겸에게 접근하여 동맹을 맺고 조정의 권력을 장악해 나간다. 영조가 죽기 3년전부터 조정은 홍인한과 정후겸 세력이 독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조가 늙어 조정일을 못하자 세손인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려 했으나 홍인한은 결사적으로 막으며 정조를 위협한다. 영조가 죽기 1년전인 82세 때 정조에게 대리청정의 뜻을 전하고 조정에서 말했으나 홍인한과 정후겸이 대리청정 반대를 하고 나선다.


"세손은 조정의 일을 알필요도 없고 인사와 국사도 몰라도 됩니다" 상식적으로 정조가 그다음 보위에 오를 왕인데 이를 막는 다는 것은 그냥 무조건 막겠다는 것 밖에는 말이 안되었다.

조정의 반대가 심하자 이번에 영조는 조정을 거치지 않고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맡긴다는 교지를 단독으로 내린다. 그러나 홍인한이 나서 제지를 하였으며 이후에도 홍인한의 훼방과 반대로 대리청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홍인한의 파직과 정조의 즉위 그리고 몰락

홍인한의 이 같은 만행으로 영조는 홍인한이 사라지길 바랬다. 그러나 이제 다늙은 영조에게는 명분도 힘도 없었다. 그런데 1776년 1월, 전 대사헌이자 이조판서 서명선이 홍인한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린다. 이를 통해 영조는 상소를 발판삼아 홍인한을 파면하게 된다. 이후 대리청정을 곧바로 진행했고 1월이 다가기 전 완료시켜버린다. 정조가 이제 본격적으로 왕위를 이어받을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2개월 뒤인 1776년 3월 영조가 죽고 정조가 즉위하자 정조는 곧바로 숙청작업에 나서게 된다. 홍인한은 충청도 여산 땅으로 유배되었다가 고금도로 유배되었으며 7월 5일 사약을 받고 처형된다. 그의 조카 혜경궁 홍씨는 홍인한의 사사를 반대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그가 죽고 그의 아들 홍낙윤이 홍인한의 신원복권을 위해 순조에게 상소를 올렸다가 거절 당했으며 손자 홍백영 역시 거절 당하였다. 이후 철종때에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러차례 철종이 홍인한 복권을 시도한 끝에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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