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신창조씨의 시조 정몽주를 암살한 자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

윤여시 2021. 10. 2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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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조씨의 시조 정몽주를 암살한 자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

여말선초 이방원의 세력에서 대표 심복으로 항상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조영규이다. 특히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를 이방원의 명으로 척살한 인물로 잘알려진 인물로 여말선초를 다루는 무수히 많은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곤 한다. 신창조씨의 시조이자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 그는 과연 누구인가?

드라마 육룡이나르샤 조영규

|조영규의 출생과 활약 - 정몽주 살해 전까지

조영규의 출생에 대한 기록은 없다. 따라서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다. 그가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사> 3번, <조선왕조실록> 6번이 끝이다. 다만 조영규는 평민출신으로 이성계가 장수로 활약한 시절부터 사병으로 들어가 공을 세운 인물로 알려졌다.

이후 1385년 가을 9월 왜구가 쳐들어와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하자 당시 판위위시사(의장에 쓰이는 물건과 기구를 관리하는 '위위시'의 책임자)로 이성계를 따라 종군해 왜구를 격멸하는데 공을 세웠다. 이때를 기록한 <고려사>에서는 이성계가 출전할 때 무장 13명과 함께했다고 하는데 조영규는 세 번째로 그 이름이 기록 되어 있다. 왜구를 격파하기 위해 유인할 때도 조영규가 작전을 수행했다고 하니 상당히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영규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하다

망해가는 고려를 지탱하며 정치적인 투쟁을 이어가던 정몽주를 그 아버지 이성계가 어쩌지 못하자 이방원은 자신이 직접 제거할 결심을 한다. 때마침 이성계가 낙마로 인해 병석에 누웠을 때, 병문안을 온 정몽주에게 이방원이 그 유명한 <하여가>로 회유를 시도한다. 그러나 정몽주가 이를 알아채고 <단심가>로 고려를 향한 자신의 충정을 드러내자 이방원은 정몽주를 죽이려고 행동으로 옮긴다.

이방원은 일찍부터 자신의 아버지 이성계의 밑에서 공을 세운 조영규를 부른다. 그때 이방원의 나이 26세였다. 사실 드라마속에서는 이방원과 조영규 둘만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제거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영규 말고도 조영무(같은 성과 이름이 비슷해 친족으로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인물로 조영무는 여흥조씨다), 고여, 이부 등 4명이 거사에 함께 참여 했다. 모두 일찍부터 이성계와 함께 했던 인물들이었다.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살해할 당시 조영규는 외빈 접대를 담당하던 전객시의 책임자 '판전객시사'로 드라마에서 보여지는것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이방원이 시키는대로만 하는 무식한 인물은 절대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 건국 후 조영규의 죽음

1392년 7월 조선이 세워질 당시 조영규는 이성계가 왕위에 오를 당시 추대자 명단에도 있다. 이는 조선을 개국한 개국공신 명단과 거의 동일한데, 나름의 서열에 따라 배치된 것이기에 조영규의 입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명단이다. 조영규는 이 명단에서 22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개국공신은 2등이다.

또한 그는 정3품 예의전서 자리에도 오르게 된다. 고려때도 그랬고 지속적으로 의전이나 외번 접대 등의 자리를 역임한것만 봐도 조영규가 무식한 무장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영규는 조선이 세워지고 3년뒤인 1395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정2품 참찬문하부사로 추증된다. 이성계의 사병에서부터 정 2품 재상의 벼슬까지 올라간 것이다.


조영규는 신창조씨의 시조로써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성씨이다. 다만 지금은 신창을 본으로 하는 조씨는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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