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장인이자 원경왕후 민씨의 아버지 민제 그는 과연 누구인가?태종의 장인이자 원경왕후 민씨의 아버지 민제 그는 과연 누구인가?

Posted at 2021. 11. 12. 23:27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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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의 장인이자 원경왕후 민씨의 아버지 민제 그는 과연 누구인가?

여말선초 킬방원이라 불리며 그의 앞을 가로막는 그 어떠한 세력도 살려두지 않았던 태종 이방원, 그의 권력에 대한 야망과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대한 욕심은 그의 부인 원경왕후 민씨의 집안이자 처가였던 여흥 민씨 집안을 향한다.

 

이에 원경왕후 민씨의 아버지이자 한때 이방원의 스승이며 장인인 민제는 자신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 민제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드라마 <육룡이나르샤> 민제

|여흥민씨 민제의 집안

고려말인 1339년에 태어난 민제의 본관은 지금의 여주의 옛 지명인 여흥 민씨다.

 

고려 충혜왕의 2비이자 충정왕의 어머니인 희비윤씨의 어머니는 여흥 민씨로 그 형제 중 민변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민변은 민제의 아버지므로 희비윤씨는 민제의 외사촌이라 할 수 있다. 즉 고려말 명문가라 할 수 있는 집안이었다. 

|민제의 벼슬생활 - 태종의 장인이되다

민제는 그 성품이 훌륭하고 인자하며 사치를 싫어했으며 독서를 좋아하는데 1번 읽으면 바로 기억할 정도로 총명하다고 소문이 나있던 인물이었다. 1357년, 공민환대에 19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한 후 공양왕 대 한성부윤으로 부임하기까지 그야말로 평탄한 벼슬생활을 했다. 

 

민제는 이방원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하는데 이후 1382년, 자신의 셋째 딸인 원경왕후를 이방원과 결혼시킨다. 당시 태조 이성계는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는 등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상태였고, 민제라는 세족과 자신의 아들을 결혼시키며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방원은 결혼 후 고려의 풍습에 따라 처가에서 한달 정도를 머물게 되는데, 이때 민제와 친했던 인물이자 후에 이방원의 오른팔 역할을 한 하륜을 소개 받는다.

 

|조선의 건국과 민제

민제가 조선건국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동생 민개는 이성계의 편에서 정치활동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1392년 조선이 개국되었을 때 민제, 민개 모두 개국공신에 임명되었다.

 

조선 건국 후 민제는 예문춘추관태학사에 임명되었다. 두 차례 왕자의난을 거치면서 민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민제의 딸이자 이방원의 부인인 원경왕후 민씨는 몰래 병장기를 확보하여 남편 이방원을 지원하고 민제의 아들인 민무구, 민무질 등은 이방원의 편에서서 왕자의난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후 정종의 뒤를 이어 태종이 즉위하니 그 딸 민씨는 원경왕후가 되며 민제는 조선 최초의 왕의 장인어른이 되었고 여흥부원군이라 불리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태종이 즉위한 후에도 민제의 집에 놀러왔다고 하는데 사석에서 민제는 태종에게 선달이라고 불렀고, 태종은 민제에게 사부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장인어른과 사위의 관계는 좋았다. 

 

그런데 이 관계는 얼마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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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방원 외척인 민제의 가문을 풍비박산 내다 - 민제의 죽음

태종이 왕위에 오른지 7년이 되던 1407년, 그의 첫째, 둘째 아들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불충 논란이 벌어지며 이로 인해 탄핵이 빗발친다. 그 탄핵 내용은 민무구 형제가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의 지위를 이용하려 했고, 다른 왕자들을 없애려 했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여기에 태종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함께 말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또한 바로 전해인 1406년,양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줄 때 기뻐했던 민무구 형제가 태종이 이를 다시 철회하자 좋지 않은 표정을 보였다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민제는 하륜과 조영무, 이숙번과 함께 양녕대군에게 세자를 물려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고 하는데, 아들과 아버지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여튼 두 아들을 향한 탄핵이 계속되자 민제는 스스로 민무구, 민무질을 유배보내달라는 청을 하였고 태종 역시 민제의 공로를 인정하여 민무구 형제를 살려주고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1408년, 민제가 병으로 눕고 죽음을 직감하자 민제는 유배를 떠나 있는 민무구 형제를 불러들인다. 이에 사간원에서는 다시 민제의 집안과 그와 함께 하고 있는 조호, 김첨, 허응, 박돈지 등에 대한 탄핵을 기다렸다는 듯이 올리기 시작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민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1408년, 70세의 나이로 죽게 된다. 하지만 이 탄핵은 그치지 않고 민제가 죽은지 2년뒤에도 계속되었고 결국 1410년, 태종은 민무구 형제에게 자결을 명한다. 

이후 1415년(태종 15)에 이르러 민제의 3남과 4남인 민무휼, 민무회 역시 불충 논란이 일게 되었고 그들 역시 다음해에 이방원의 명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이렇게 민제는 4명의 아들을 자신의 사위로 인해 모두 허무하게 잃어야한 것이다. 

 

그의 묘는 지금의 북한 개성에 위치하고 있다.


민제, 조선 최초의 왕의 장인이었지만 자신의 사위 태종 이방원에게 아들을 모두 잃어야하는 비극을 맞이했던 인물이다. 역사는 민제를 기록하길 어질고 검소하였으며 특히 역사를 잘알고 시평을 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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