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왕비로 살지 못했지만 조선 최초 왕비가 된 이방원의 어머니 신의왕후 한씨

윤여시 2021. 11. 2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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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로 살지 못했지만 조선 최초 왕비가 된 이방원의 어머니 신의왕후 한씨 

조선 최초의 왕비는 누구일까? 공식적으로는 이성계의 둘째 부인이자 이방번과 이방석의 어머니인 신덕왕후 강씨를 첫째 왕비로 되어있다. 그러나 여기 이성계의 정비로 정종 이방과와 태종 이방원의 어머니이자 조선 건국을 보지 못하고 죽은 신의왕후 한씨가 있다. 그녀의 삶은 어떠했을까? 

 

드라마 용의눈물 신의왕후 한씨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미디어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신의왕후 한씨의 출생과 이성계와의 결혼

신의왕후 한씨는 1337년(충숙왕 5년)에 고려 동북면 영흥에서 태어났다. 한씨가 태어날 때 인근에 있는 청학산에서 풍류소리가 3년이나 끊이지 않아 풍류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신의왕후의 삼대 조상이 묻힌 곳이었다고 전해지니 그녀의 출생부터 남다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한씨의 아버지 한경은 동북면 인근 고을 안변지역의 세력가중 하나였는데, 이성계의 증조부가 두만강 지역에서 여진족에게 쫒겨 안변지방으로 내려왔고 이때부터 안변지역의 가문들과 두터운 관계를 맺었었다. 이 같은 인연으로 동북면 실력자 중 하나였던 이자춘의 아들 17세 이성계와 한경의 딸인 15세 한씨가 1351년 결혼을 하게 된다. 이때 신의왕후 한씨의 나이 15살이었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 왼쪽부터 신의왕후한씨, 신덕왕후강씨, 이방원의 아내 원경왕후 민씨

|신의왕후 한씨의 내조와 위화도 회군

신의왕후 한씨가 자녀를 6남2녀를 낳을때, 이성계는 한창 북쪽 홍건적, 여진족은 물론 왜구의 침입을 연달아 막아내며 고려의 명장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이때 이성계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머무르고 있었고 한씨는 고향 함흥에서 자녀들을 키우며 이성계를 내조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개경에서 고려 권문세족 출신의 빵빵한 가문이었던 강윤성의 딸 강씨와 정략혼인을 맺으며 경처(개경의 부인)로 맞이하였고 한씨는 함흥에서 고향의 부인인 향처로 불리며 집안을 돌봤다고 전해진다. 고려말 중혼은 엄연히 허락되지 않았지만 당시 고위공직자(?)들은 개경에 부인(경처)과 고향의 부인(향처)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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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1388년 이성계 집안에 큰 전환점이 되는 위화도회군이 일어났을 때, 이성계는 자신의 가족이 포로가 되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의 포천 제벽동 농장에 있는 한씨를 다시 동북면으로 피신시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위화도회군이 성공하며 태조 이성계의 천하가 왔으나 고려가 건국되기 1년 전인 1391년 55세의 나이로 죽고 만다.  그러면서 공식적으로 조선의 첫째 왕비는 신덕왕후 강씨가 되는 것이다. 

 

|신의왕후 한씨 죽음 이후 

신의왕후 한씨가 죽고 건국 직후에 절비로 추존 되고 지금의 개성에 묻혔으며 제릉이라고 불린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그녀는 비록 조선의 첫째 왕비가 되지는 못했지만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왕자의난을 일으키며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 이방번과 이방석을 참살함에 따라 신덕왕후 강씨가 아닌 한씨의 자손들이 왕권을 잇게 된다. 

둘째 아들이 정종에 오른 후 무엇보다 신의왕후 한씨의 추존에 앞장섰고 1398년 절비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하였으며 사당의 이름을 인소전이라 불렀다가 태조 이성계가 승하한 후 함께 모시며 사당의 이름을 문소전으로 바꾼다. 뒤를 이은 태종 이방원은 1408년 신의왕후 한씨의 시호를 승인순성신의왕태후로 다시 한 번 올리며 최상의 예우를 보였다.

 

반면 신덕왕후 강씨는 앞서말한 것처럼 두 아들을 모두 잃었고, 사위까지 모두 잃었기 때문에 후손이 끊기게 된다. 또한 태종 이방원은 신덕왕후 강씨를 싫어하여 장례도 제대로 치루지 못했고 그 묘지도 후궁격으로 깎아지니 죽어서는 분명 신의왕후 한씨의 승리라 할 수 있겠다. 

 

 

조선 첫번째 중전 신덕왕후 강씨 그리고 정릉

조선 첫번째 중전 신덕왕후 강씨 그리고 정릉 이방원이 왕위에 올라 조선의 기틀을 닦는 태종이 되기까지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자신의 배다른 아우인 방석, 방번도 있었는데

yoosi0211.tistory.com

|신의왕후 한씨 태종 이방원의 꿈에 나타나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종이방원이 자신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에게 양위를 시도하였는데, 신하들이 양녕대군의 성품을 알고 필사적으로 양위를 막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태종의 꿈에 신의왕후가 밤마다 나타나 울며 '나를 굶기려 하는가?'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이방원의 오른팔 이숙번이 어린 양녕대군에게 양위를 무리하게 물려주면 종묘사직이 위태로워지니 신의왕후 한씨가 나타나는 것이라 해몽을 하였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여 양위를 취소했다고 전해진다. 


태종 때 신의왕후 비문에는 그녀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총명하고 슬기로워 범상한 사람과 달랐으며 태조께서 수십년 동안 전쟁을 참여했을 때 힘을 다해 집안을 다스렸고 성품 또한 투기가 없어 첩을 예로 대접했고 자녀들을 의리로 가르치셨다' 

 

비록 신의왕후 한씨는 조선의 첫째 왕비는 아니였지만 조선 건국 후 그녀의 자손은 왕이 되었고, 그 이상으로 추존을 받았으니 그나마 편안히 눈을 감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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