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의 첫째 아들 무안대군 이방번 그는 누구인가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의 첫째 아들 무안대군 이방번 그는 누구인가

Posted at 2021. 11. 30. 22:05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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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의 첫째 아들 무안대군 이방번 그는 누구인가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의 후사를 놓고 큰 갈등이 점화된다. 특히 이방원으로 대표되는 신의왕후 한씨의 아들 6명을 제끼고 정도전 세력이 밀었던 신덕왕후 강씨의 어린 두번째 아들 이방석이 세자로 임명 되면서 갈등은 폭발, 결국 잘 알다시피 제1차 왕자의난은 일어나고 만다.

 

그런데 다른 신의왕후 한씨의 아들들은 그렇다치고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첫째 아들이었던 이방번 대신 이방석이었을까? 이방번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이방번의 출생과 성장

이방번은 태조 이성계와 둘째부인 신덕왕후 강씨의 첫째 아들이자 이성계의 7남으로 1381년 고려 우왕때 태어난다. 이후 불과 6살인 1387년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의 동생 왕우의 딸과 결혼했고 1390년 이성계의 공로로 고려왕실로부터 고공좌랑이란 직위를 받는다. 이때 그의 나이 불과 9살때였다.  

|조선 건국 후 세자에서 외면 당한 이방번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무안군이 되었고 의홍친군위절제사에 임명되었으며 태조 2년인 1393년에는 좌군절제사로 임명되는 등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의 총애를 받기도 하며 세자로써 무난히 올라가는 듯 싶었다. 

그러나 정도전, 조준, 배극렴 등의 공신들이 '이방번은 거만하며 경솔하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강씨의 소생 중 세자로 임명하려면 둘째 방석이 낫다고 간언하면서 이방석이 세자가 된다. 

 

물론 성격의 이유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결혼한 아내가 공양왕의 조카이므로 무너진 고려왕조의 왕족이 조선 왕의 장인이 될 수 있는 바, 이같은 이유도 이방번이 이방석에게 세자자리를 빼앗기는데 일정부분 이유가 되었다.

                           

드라마 정도전 중 무안대군 이방번 

|1차 왕자의 난 당시 이방번의 행적

태조 7년인 1398년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인 이방원의 주도아래 제 1차 왕자의난이 일어나게 되고, 이때 뜻밖에 이방원이 이방번에게 난에 함께 하여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자고 권유했지만 이방번은 이를 따르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 이성계에게도 고해 바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방원이 이방번에게 난을 함께 하자고 한 대목이 눈에 띈다. 사실 이방번이 군사력은 꽤 영향력이 있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앞서 이방석을 세자로 올리면서 힘을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매형 이제(신덕왕후 강씨의 딸 경순공주의 남편)와 함께 이방번에게 의흥친군위절제사를 임명했기 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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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군제 개편을 통해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의 가별초를 거느리기까지 하면서 이방번의 사병이 무시못할 정도였다. 기록에 따르면 1차 왕자의난 이후 이방번이 이끌던 하인이나 잔당들이 난리를 펴서 이숙번에게 제압당했다는 이야기까지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여튼 이러한 이유로 이방원이 이방번을 회유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방번이 이 회유를 받아드렸다면 동생 이방석이 죽은 것과는 달리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방번은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형 이방원의 편도 동생 이방석의 편도 들지 않는다. 

용의눈물 이방번 정태우가 맡았다.

|이방번의 최후

제1차 왕자의난 이후 이방번은 성문 밖으로 쫒겨난 후 살해 당하는데 이때 이방번의 나이 불과 18세였다.

 

사실 1차 왕자의난이 성공했을 때, 이방번과 이방석은 그 목숨은 거두지 않고 지방에 유배 정도 보낼 것이라 이성계는 생각했다고 전해지며 이방원 역시 '외방에 보낼지라도 반드시 돌아올 것이니 잘가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방간 등이 도당에서 의논하여 방번을 죽이게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이방원이 이방번과 이방석을 죽인 것을 듣고는 화를 냈다고는 하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여튼 이방번은 18살이라는 어린나이로 죽게되고 태종은 공순군의 시호를 내렸다. 이후 어린나이에 죽어 후손이 끊긴지라 세종대에 5번째 아들 광평대군을 양손자로 입적하게 하였다. 광평대군 역시 20살의 나이로 죽었으나 그 후손은 잘 이어졌다고 전한다. 

 

숙종대에 이방석과 복권되어 무안대군이라 불리게 된다. 현재 이방번의 묘는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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