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임진왜란 마지막 빌런 왜군 명장 노량해전 시마즈 요시히로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3. 11. 1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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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마지막 빌런 왜군 명장 노량해전 시마즈 요시히로 그는 누구인가?

조선의 국토를 황폐화하고 명나라, 왜 동북아 3국 모두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임진왜란! 그리고 이제 7년의 전쟁 마지막 노량해전이 펼쳐진다. 구국의 영웅 이순신은 조선을 침략한 왜군들을 용서할 수 없었고, 명나라와 함께 이를 피해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왜군과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한다. 그리고 왜군에서 퇴각 작전을 준비한 자는 왜군 명장 시마즈 요시히로다 그는 누구일까?

 

1. 임진왜란 전, 시마즈 요시히로 규슈를 점령한 무장

영화 노량에서 시마즈요시히로 역을 맡은 백윤식

 

1535년 태어난 시마즈 요시히로는 시마즈 가문의 차남으로 큰 형과 함께 지금의 일본 규슈 지역 통일을 위해 어려서부터 수많은 전쟁에 참여한다.

 

1554년부터 규슈 지역의 통일대업에 나선 시마즈 요시히로는 규슈 전 지역을 거의 다 점령할 때쯤인 1587년, 규슈의 오오토모 가문이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원군을 청하면서 시마즈 요시히로는 도요토미의 10만대군과 싸우게 되었고, 맹렬하게 저항했지만 애초에 체급 자체가 너무 차이가 났던지라 결국 항복한다.

재미있는 것은 시마즈 요시히로는 자신이 총사령관임에도 칼을 들고 겹겹이 자신의 군대를 포위한 도요토미 군과 미친듯이 싸웠는데 그의 형 요시히사가 항복한줄은 꿈에도 모른채,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있다가 형 요시히사가 항복을 권유하자 항복하게 된다. 그만큼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맹렬하고 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튼 도요토미히데요시는 항복한 시마즈 가문의 영지를 인정해주고 규슈 남부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그리고 이 모든 패전의 책임을 형 요시히사가 지고 출가하면서 요시히로가 시마즈 가문의 당주 자리에 올라선다.  

2. 임진왜란에 참가한 시마즈 요시히로의 공적

시마즈 요시히로 초상화

 

시마즈 요시히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과 함께 약 1만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땅을 침공한다. 하지만 이때 그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나 병력을 늦게 차출하여  4번대 모리 가쓰노부의 휘하에 배속 강원도 땅을 주로 침략한다. 이때부터 시마즈 요시히로는 조선의 온갖 문화재는 물론 도공들을 납치하여 왜로 보내는 일을 주로한다.

1593년 자신과 함께 조선을 침탈한 후계자 히사야스가 병에 걸려 죽자 다시 차남을 데려왔지만 임진왜란이 마무리 될(?) 기미가 보이자 본국으로 간다. 그러나 결국 히데요시가 다시 조선을 침공하는 정유재란(1597년)을 일으키자 다시 한번 참전한다. 이후 도도다카토라 수군과 함께 원균의 조선 수군을 칠천량에서 박살낸다. 여기에 2차 전주 남원성 전투는 물론 부여까지 침략하며 연전연승을 하고 명나라 원군을 보일때마다 격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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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0월 말부터는 지금의 경남 사천에 성을 쌓고 주둔한다. 1598년, 그가 7천명의 왜군으로 지키고 있는 사천땅에 조명연합군 4만명이 쳐들어오면서 전투가 시작되지만 놀랍게도 조명연합군이 큰 피해를 입으며 패배한다. 이로 인해 시마즈 요시히로는 명나라에서 귀석만자라 부르며 두려워했던 존재가 된다. 이처럼 요시히로가 왜군에서는 나름 명장이며 절대 만만히 봐서는 될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 왜군은 뜻밖의 상황에 부딪힌다. 바로 조선 침공을 지휘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난것이다. 왜군은 이 소식을 접하고 자신들 군대의 사기와 당시 교섭을 진행중이던 명나라와의 외교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 이를 숨겼지만, 결국 시마즈 요시히로는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후퇴를 결심한다. 

3. 왜군을 본국으로 후퇴시켜라 - 노량해전

노량해전

1598년 11월 왜군은 본국으로 가기 위한 필사의 탈출 작전을 펼친다. 처음에는 고니시유키나가가 이순신과 진린에게 뇌물을 보내며 퇴각을 봐줄 것을 요청했지만 흔들렸던 명나라와 달리 이순신은 절대 이를 용서치 않고 거절해버린다. 

 

이에 요시히로는 퇴로가 막힌 고니시 유키나가를 탈출시키기 위해 이순신과 명나라 진린이 이끄는 조명수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진린의 명나라 수군을 끝까지 분쇄하며 탈출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이순신장군이 진린의 수군을 도와주며 요시히로의 수군을 박살내기 시작한다.

 

이때 요시히로의 5백척의 배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여 이순신의 포위를 뚫고 겨우 탈출하니 자신의 배는 불과 50척이었다. 그러나 어찌됐든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전사를 만들어내었고 조금이나마 왜군을 이끌고 탈출에 성공한것만으로도 본국에서 공적을 인정 받는다. 

4.시마즈 요시히로의 미친듯한 전투 그리고 퇴각과 최후 

 

1600년 도쿠가와이에야스와 도요토미간의 명운을 건 세키가하라전투가 벌어진다. 이때 요시히로는 1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이시다 미쓰나리가 이끄는 서군에 가담한다. 그런데 총대장 미쓰나리는 1500명 밖에 못끌고 왔냐며 공개망신을 주고 요시히로가 야심차게 제안한 밤의 기습작전 전략도 면전에서 무시 당하는 일을 겪어야 했다. 그러던 와중 전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에게 기울기 시작한다. 

여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이 시마즈 요시히로 군대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하며 요시히로 군의 퇴로는 완전히 막혀버린다. 이에 시마즈군은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 뒤로 퇴각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적군의 본진이 있는 앞으로 퇴각을 하는 사상초유의 결정을 한다. 

 

이는 오히려 전방이 더 포위가 약할 것이라는 요시히로의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이것이 그 유명한 시마즈의 퇴각이다. 이때 시마즈군은 도망치는 동안 팀으로 나눈 저격수가 계속 후미를 지켜주면서 적을 저격하고 이후 칼을 빼들고 적진으로 들어가 싸우면서 시간을 계속 벌게 된다. 

한 번 적진으로 향하면 살아돌아올 수 없었지만 그만큼 병사들은 온 몸을 바쳐 요시히로를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 믿지못할 퇴각은 요시히로를 구해냈다. 물론 1500명의 군사 중 살아 돌아간 병력은 요시히로 자신과 80명이 전부였다.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이에야스 가문이 전 일본을 장악하게 되고 시마즈 요시히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화해를 청했으며, 1602년 요시히로는 일선에서 물러나고 막부에 충성하는 조건으로 가문의 영지를 지킬 수 있었다. 요시히로는 말년까지 조용히 지내다 치매로 인해 고생을 하다 1619년 8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노량해전의 최후 빌런 시마즈 요시히로 그는 이순신을 만난 덕분에 완전한 박살이 나지만 분명, 그는 수많은 전투에서 놀랄만한 판단력을 보였던 용장임에는 틀림 없는 인물이었으며 일본 역사에는 나름 이름있는 장수임에는 틀림없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마즈 요시히로마저 박살을 낸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전투는 더욱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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