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은 명나라 수군 장수 등자룡 그는 누구인가?
임진왜란을 통틀어 명나라 장군 중 전사한 유일한 장군이 있다. 바로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등자룡이다. 나이 70의 나이로 명나라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임했던 등자룡 그는 과연 누구일까?
1. 명나라 장수 등자룡
1531년 지금의 장시성에서 태어났다. 용모가 크고 민첩하여 그 누가봐도 무관이었다. 1558년 그의 나이 27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 지금의 장시성의 도적들을 평정하는 등 공을 세웠다. 여기에 당시 곳곳에서 일어난 남쪽의 반란을 여러번 진압하는 등 나름 명나라에서는 명장으로 꼽혔던 인물 중 하나다.
진린이 조선으로 원병을 떠나기 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등자룡이 자신의 9명 아들과 하인 200명을 데리고 찾아왔는데, 이에 진린이 연세가 있는데 싸울 수 있겠냐 물어보자 "춘추전국시대 염파와 황충, 엄안의 사례를 들며 마당에 있는 개를 잡아 목을 그대로 비틀고 고기를 생으로 먹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제야 진린 역시 등자룡의 참전을 허락했다고 한다.
2. 노량해전에 참전한 등자룡
임진왜란이 진행중이던 1598년 2월 이순신 장군은 명량에서 승리 후 지금의 고금면으로 수군 본영을 옮긴다. 그리고 이후 7월이 되어서 명나라 진린을 필두로 등자룡이 수군 원병을 이끌고 이순신 장군의 본영에 합류한다.
그리고 곧 이어 1598년 11월 19일, 7년간의 임진왜란(정유재란 포함)이 막을 내리는 노량해전이 벌어진다. 조명연합군의 포위를 뚫고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왜군과의 전투말이다.
등자룡은 이때 이순신 장군이 빌려준 판옥선 1척을 타고 이순신 장군과 함께 힘을 모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포격으로 왜군을 무찌르던 이전의 전투와는 달리 노량해전에서 조명연합군은 왜군을 끈질기게 물어뜯으며 육탄전을 벌인다. 그런데 이때 등자룡이 타고 있는 배로 명나라 배에서 잘못 쏜 화기가 떨어져 불이 붙으면서 배의 기능을 상실했고 왜군이 이를 기회삼아 등자룡이 있는 배로 올라선다.
이에 이순신 장군이 위태로운 등자룡을 도우러 왔으나 이미 왜군들의 칼에 등자룡은 전사하고 만다. 그의 나이 70살이었다.
3. 오늘 기억하고 있는 등자룡
왜군은 등자룡을 죽이고 그의 수급을 베어서 도망갔는데, 그래서일까 지금도 그의 조각상에는 머리가 없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등자룡의 후손 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등소평(덩샤오핑)이 있으며 중국에서도 등자룡은 노익장을 과시한 명장으로 지금도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선조실록에 따르면 선조가 등자룡의 죽음을 알고 지금의 전남 완도군 고금도 충무사에 제문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등자룡, 진린에 비해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70세의 나이에 이순신 장군의 판옥선을 빌려 전투에 임했을 정도로 분명 엄청난 노익장을 과시했던 용장이었던 것 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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