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서양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충돌 -그라니코스 전투

윤여시 2013. 11. 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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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충돌 -그라니코스 전투

그리스의 반란들을 모두 진압하고 뒷 후방을 완벽하게 막아 놓은 알렉산더 대왕은 이제 자신의 꿈이었던 페르시아의 정벌에 그 눈을 돌린다.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로 향하게 되고 그 첫 전투가 바로 그라니코스 전투이다. 그라니코스 전투는 어땠을까?



 그라니쿠스 전투의 시작. 알렉산더 대왕의 첫 원정길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원정길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마케도니아를 안티파트로스 장군에게 맡기고 출정을 떠난다. 여러 그리스 도시들에서 보낸 군사들로 인해 7만의 그리스 병사가 알렉산더 대왕을 따랐다. 한편 페르시아의 당시 왕이었던 다리우스는 알렉산더 대왕과 그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도 전혀 신경 조차 쓰지 않았다.

이에 알렉산더 대왕은 무난히 세스토스에서 항로를 이용해 헬레스폰토스해협을 건너 페르시아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서야 페르시아의 총독들은 군사를 모아 그라니쿠스강 건너편에 세워놓고 알렉산더 대왕을 도발하기 시작한다. 이때 페르시아의 멤논은 먼곳에서 원정 온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의 보급품 일체를 태워버리고 도망치는 청야전술을 제안했으나 페르시아 총독들은 이를 거부하고 전면전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라니코스 전투

그라니쿠스강가에 대치한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


 페르시아는 보병을 동쪽편에 세우고 자신있는 기병부대를 앞세워 순식간에 강을 건너 진격하여 알렉산더 대왕을 초기에 박살내고자 했다. 페르시아의 기병부대가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중 한명인 파르메니온 장군은 기습작전을 선택하자고 건의 했으나 알렉산더 대왕은 강을 건너야하고 또 병력이 더 적었음에도 즉각적인 돌격작전을 선택한다.

이에 페르시아군과 알렉산더 대왕의 군은 곧바로 맞붙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중무장 보병을 군에 중심에 세우고 양옆에 기병을 세운 진으로 페르시아의 우측을 강타한다. 이에 페르시아군은 귀족으로 구성된 기마병을 이끌고 알렉산더 대왕이 있는 중앙을 그대로 들이받는데 페르시아 장군 레사세스와 스피트리다테스가 알렉산더 대왕을 향해 다가온다. 



 알렉산더 대왕의 용맹함은 알아줘야 한다.


이에 알렉산더 대왕은 바로 칼을 뽑아 레사세스의 목을 베려 했는데 스피트리다테사스가 자신의 도끼로 알렉산더 대왕의 투구를 내려쳤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비틀거렸고 스피트리다테사스가 바로 알렉산더 대왕의 목을 치려는 순간 알렉산더 대왕의 충실한 심복장군 클레이투스가 스피트리다테사스를 죽여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에 장군을 잃은 페르시아의 선봉대와 마케도니아의 신출귀몰한 기병전술로 인해 전열이 무너진 페르시아군은 겁을 먹고 퇴각을 한다. 하지만 이 패주로 인해 페르시아군은 마케도니아 군사의 2배가 넘는 피해를 입고 페르시아에 고용되어 전투를 벌였던 페르시아의 용병대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명령에 따라 18000여명이 죽고 2000여명이 노예로 끌려가게 된다. 그라니쿠스 전투는 알렉산더 대왕의 대승이었다.



그라니쿠스 전투

이 승리로 인해 소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알렉산더 대왕의 밑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이 지역이 열리면서 그리스와의 교통로를 확보함은 물론 안전하게 물자를 이동시킬수 있는 지점이 생겼다. 또한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3세는 이때도 알렉산더 대왕을 무시하며 멤논에게 해군을 주어 해안지역을 막게 하고 영지를 다스리는 페르시아 총독으로 하여금 알렉산더 대왕을 막게 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벌기는 아직 끝나지 안항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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