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너무 비싸! OPEC 석유수출국기구의 탄생과 유가의 진실
월급 빼고 다오르는게 현실이라지만 우리 실생활에서 기름값은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무한대체에너지 자원이 개발된다는 소리가 있어도 아직 우리 인류의 주 원료는 화석에너지 그중에서도 석유가 너무나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기름값이 올랐다 내렸다 한다는 소식이 뉴스로 들려 올때면 그 원인으로 지목 받는 곳이 바로 석유수출국기구 OPEC이다. 때문에 사람들인 OPEC을 밑도 끝도 없이 원망하곤 하는데, 그렇다면 OPEC는 무엇이고 그들은 어떻게 석유수출을 통제하고 있을까?
|OPEC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탄생배경
중동의 석유가 알려진 것은 20세기에 막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유럽의 강대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는 이 중동 석유의 중요성을 알고 채굴권, 생산, 판매를 독점하면서 실제 산유국에게는 혜택이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석유가 발견된 1900년대초부터 1970년대까지 배럴당 원유가는 놀랍게도 평균 2~3달러 수준이었다. 석유 1배럴이 약 195리터 정도이니 1리터에 0.6센트도 안되는 가격으로 사들인 강대국은 소비자에게는 1달러에 1리터를 팔며 이익을 챙겼다.
생산원가에서 최종 소비자가격의 차이가 200배가 넘는 말도안되는 규모였다. 생산에서 정부 지분을 일부만 산유국이 갖고, 시추, 채굴, 생산, 수송, 정제, 판매, 유통, 서비스, 고객 관리 모든 것들을 석유회사 세븐시스터즈라고 불리는 이들이 가졌다.
세븐시스터즈 :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세계석유시장을 독점한 기업으로 스탠다드 오일 오브 뉴저지, 스탠다드 오일 오브 뉴욕, 엑손 모바일, 스탠다드 오브 캘리포니아, 걸프 오일, 텍사코, 세브론 ,로열 더치 셀, 앵글로페르시아 오일 컴퍼니, 등이며 이들은 석유시장의 83%를 장악하고 있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석유를 다시 매입할 때, 정제된 석유 제품을 사려고 몇십배의 돈을 더주어야 하는 것이었으며 때문에 중동의 산유국들은 경제적으로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그래서 참다 못해 산유국들이 만든 기구가 바로 1960년 OPEC였다. 이 당시는 아랍의 민족주의가 성장하는 것과 맞물려 강대국과 석유회사재벌에 대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내세우기 위해 세워졌다.
|OPEC의 초기 - 고난의 연속
OPEC의 시작은 너무도 미약했다. 산유국들의 영향력은 당시 석유자산가들에 비할바 못되었고 생산또는 가격 결정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때문에 초기 OPEC은 유명무실했고 가격은 지속적으로 떨어져 배럴당 1.29달러라는 가장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OPEC은 결국 개별 산유국 정부를 대신해 수입을 따르는 공시 가격 1.80달러로 고정하고 산유국의 안정적인 이익을 위해 로열티는 배럴당 고정 수수료로 바꾸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기름값을 싸게 사기 위한 외부의 압력 등이 있었고 OPEC이 유가를 조정할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하기까지 10년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OPEC의 중기 - 영향력을 발휘하다
1969년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등장하면서 그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였고 아랍민족주의를 강력하게 표방했다. 이와함께 석유 재벌들과의 투쟁과 협상을 통해 석유가의 주도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처음 OPEC이 협상에 성공한 전례를 남겼고 다른 산유국들도 석유가 인상 협상에 성공했다.
그리고 1973년 벌어진 제 4차 중동전쟁을 기점으로 석유를 무기화하는데 성공했고 국제 원유 시장의 통제권을 산유국들이 가져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그들의 카르텔이 형성되면서 이제 OPEC은 무시할 수 없는 그룹이 되기 시작한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의 석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OPEC에 대한 석유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생산량 역시 1972년 11퍼센트에서 1973년 17.5퍼센트까지 늘리게 된다.
|OPEC 지금에 이르기까지
1973년을 기점으로 유가는 시장 가겨기 두배나 뛰어 올랐으며 1.80달러의 공시가격을 던져버리고 3달러 까지 오르게 된다. 여기에 산유국들이 성장함에 따라 석유회사들의 시추율을 올리는 시도를 막을 수 있었고 생산에 대한 산유국들의 통제력도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1973년 제 4차 중동전쟁을 시작으로 이라크를 제외한 아랍 석유 수출국들이 일제히 생산량을 감축하였고 미국 및 네덜란드 선적을 제한했다. 그 결과 세계 원유 공급량이 떨어지고 아랍 산유국은 일방적으로 사우디산 원유의 가격을 배럴당 11.69까지 올려버렸다. 이것이 제 1차 석유파동이다.
이후 1974년부터 1978년까지 4년동안은 잠잠하다 1978년 석유 근로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이란 석유 생산량의 감소되기 시작했고 이란 혁명의 여파를 타면서 1979년 38달러에 이를 정도로 유가는 미친듯이 올라간다. 그러다 1981년 유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생산을 감소시켜 생산량을 조절하였고 석유의 실제 가격을 떨어트려 OPEC석유 수요를 지속적으로 감소시켰다. 그 후 석유가는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약 20년 동안 배럴당 20~30달러 시대를 이어갔다.
그러다 제3세계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9.11테러, 이라크 침공,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 경제 제재 등으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는 등 자본주의의 시장가격에 맞춰 요동치게 된다. 마치 주식이 위험요인에 의해 상승하고 하락되는것처럼 말이다.
이는 석유가 발견된 후 100년만에 시장원리에 의한 석유가가 형성되어 자원보유 국가들이 몫을 챙기게 된 것이며, 아직도 석유 재벌들이 수송, 정제, 유통, 판매 과정을 장악하고 산유지 유가의 10배에 해당하는 부가가치를 독점 하고 있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석유 발견 100년의 역사중 약 70여년에 가까운 시간을 선진국과 재벌이 독점하면서 성장해나갔고, 겨우 OPEC이 결성되어 원유가 시장가격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진정으로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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