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소 하나로 정조를 왕위에 올리다 계중 서명선 그는 누구인가?상소 하나로 정조를 왕위에 올리다 계중 서명선 그는 누구인가?

Posted at 2021. 10. 13. 23:46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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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 하나로 정조를 왕위에 올리다 계중 서명선 그는 누구인가?

서명선

|서명선의 출생

 

서명선은 1728년 지금의 대구에서 출생하였으며 이후 한성에서 성장한다. 정조가 신임했던 서명응이 그 형으로 아버지는 이조판서 서종옥이다. 서명은 1753년 그의 나이 25살에 생원이 되고 1763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다. 영조대에 그 능력을 인정 받아 사헌부지평, 사간원헌납, 홍문관응교 등을 지냈으며 1769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기도 하였으며 이조 참판의 자리까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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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를 구한 서명선의 상소 한장

 

나이가 82살이었던 영조가 자신의 세손인 이산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겠다는 말을 할때면 죽어라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바로 좌의정 홍인한을 필두로한 정후겸, 화완옹주 세력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영조가 그 당시 엄청난 고령이었음에도 정정하다며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아세웠다. 다시 말해 세손의 왕위 승계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영조는 필사적으로 대리청정을 막는 신하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때 정조의 심복인 홍국영이 말도 안되는 명분으로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고 있는 홍인한 일파를 물리칠 상소를 올릴 인물을 찾고 있었는데, 그때 눈에 띄인 인물이 바로 서명선이다.

 

서명선은 당시 주류였던 노론과 다른 세력이었던 소론의 대표격 인물이자 이조참판 자리에 있었으며 그 강직함이 이미 조정에 소문이 나있던 인물로 홍인한을 탄핵할 상소를 올릴 인물로는 적격이었다. 서명선의 홍인한 탄핵 상소는 영조는 이를 명분삼아 정조의 대리청정을 명했고 이후 영조가 죽고 마침내 정조는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다음은 서명선의 상소 내용이다. 

1755년 12월 3일 서명선이 상소하기를,

"오직 우리 성상께서 임어하신 지 이미 50년이 되었습니다. 

부지런하시고 노고하심을 하루같이 하시어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느라......이 대리청정하는 일은 오로지 나라를 위하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삼가 듣건대, 지난달 대신이 입시하였을 때 좌의정 홍인한이 감히 ‘동궁(東宮)이 알게 할 필요 없다.’라는 말을 함부로 말하였다고 합니다.

동궁이 알지 못한다면 어떤 사람이 알아야 하겠습니까? ..... 그 무엄하고 방자함은 아주 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상참 때에 전 영상 한익모의 ‘좌우는 걱정할 것이 없다.’라는 말은 또 무슨 망발입니까? ...... 그 말이 비록 무식한 데서 나온 것이었다고 하나, 그 사실은 불충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나라 일이 이러하고 대신이 또한 이와 같은데도 옆에서 들은 지 여러 날이 되도록 삼사의 자리에 있으면서 감히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신은 통곡하고 크게 탄식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손수 상소문을 봉하고 직접 궐하에 나와 경건한 정성으로 바쳐 우러러 성청을 번거롭히오니, 삼가 비옵건대, 성상의 밝으신 지혜를 혁연히 떨쳐 펴시어 크게 밝은 명(命)을 내리시고 빨리 대신의 죄를 바로잡아 국가의 대사가 존중되는 지경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하였다

 

옷소매붉은끝동 서계중

|정조의 신임을 얻게 된 서명선 

 

자신을 왕위에 올리는데 엄청난 역할을 한 서명선의 상소를 잊지 않은 정조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지켜준 홍국영, 서명선, 정민시 등을 신임했고 서명선이 상소를 올린 날인 12월 3일을 해마다 기리며 그들을 동덕회로 불렀고, 규장각에 모여 술자리를 함께 했다고 한다. 

 

이후 홍국영이 권력욕으로 인해 정조에게 축출 당하자 정조는 서명선을 더욱 신임하게 된다. 단순히 서명선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능력을 넘어 정조가 중요하게 생각한 탕평의 일환으로 얼마 없던 소론이라는 점이 정조가 서명선을 중요시하게 생각한 주된 이유였다.
이렇게 서명선은 정조의 신임을 바탕으로 군사권을 지닌 수어사를 비롯하여 우의정, 영의정에 이르는 등 탄탄대로를 걷는다. 

또한 서명선이 조정을 주도하면서 서명선과 함께 하는 세력은 사도세자의 추숭에 찬송하고 정조의 정책에 찬성하며 시류에 편승한다 하여 시파로 불렸으며, 이와는 반대로 사도세자의 추숭에 반대하고 정조의 정책에 반대하는 노론 세력이 자신들의 궁벽한 처지에서 그 이름을 따와 벽파라고 불리는 등 서명선에 의해 정조 시대 양쪽 정파가 생기게 된다. 얼마나 서명선이 당시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dmz 파주시 장단면에 위치한 서명선 묘역 <출처: 시그널>

|서명선의 사후

정조에게 중용을 받던 서명선은 1791년 그의 나이 63세의 나이로 죽고 만다. 그는 이후 현재 파주시 진동면에 묻히게 되는데 서명선의 묘에는 정조가 지은 어제사제문비가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정조의 어제사제문비>

흉악한 무리들이 설치는 와중에 분연히 일어나 몸바쳐 싸우고

을미년 겨울 위태로운 순간에
비분강개하여 한 장의 상소로 알려

음흉한 재앙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기둥과 초석같은 신하가 되어 여러차례 간흉들을 처리하고

종묘사직을 안정시키며 십여년을 나를 보필했는데

지난 섣달에 한번본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니
동덕회에선 누구랑 즐거움을 나누겠는가
애도의 글을 쓰는데 눈물이 흘러 종이를 적시는 구나

얼마나 정조가 서명선을 아꼈고 자신을 위해 써준 상소 한장을 고마워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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