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일본의 적장 이순신을 존경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임진왜란 일본의 적장 이순신을 존경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

Posted at 2022. 5. 8. 22:41 | Posted in 세계사/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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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일본의 적장 이순신을 존경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의 개봉과 함께 성웅 이순신에게 처참히 패배할 적장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함께 나올 예정이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순신을 처음에는 우습게 보던 조선군의 일개 장수일뿐이었지만 한산도대첩에서 처참히 패배하고 그 후에도 연전 연패 하면서 처음에는 꼭 이기고 싶은 증오의 대상으로 이순신장군을 생각했으며, 이후에는 흠모하고 숭상까지 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와키자카 야스하루 그는 과연 누구일까?  

 

드라마 불멸의이순신에서 표현된 와키자카 야스하루 <배우: 김명수>

|임진왜란 이전의 와키자카 야스하루

1553년 와키자카는 오미국(현재 시가현)의 와키자카 가문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로 여러 가문(다이묘)들의 크고 작은 전쟁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때였다.

 

이때 와키자카 가문은 본래 아자이 나가마사의 가신이었다가 1573년 아자이가문이 오다 노부다가의 공격으로 멸망하여 그의 가신 중 하나인 아케치 미츠히데 아래에서 공을 세운다. 

이후 아케치 가문을 떠나 오다 노부다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하가 된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하였는데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을 앞두거 펼쳐진 시즈카타케 전투에서 승리하며 시즈카타케의 칠본창(도요토미를 수호한 7명의 장수)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영화 명량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을 맡은 배우 조진웅

|임진왜란 발발과 와키자카 야스하루

임진왜란 개전 후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해상 운송과 수군을 맡았으나 더 많은 공적을 세우기 위해 육군의 장수로서 
전투에 참가한다. 이때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조선군을 무참히 패배시킨 전투가 있었으니 바로 용인 전투다. 

 

1592년 7월,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한 왜군을 향해 전라감사 이광을 대표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삼남의 흩어졌던 조선군이 힘을 모아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 짓쳐들어간 전투인데, 이때 조선군은 약 5~7만 규모였다. 그러나 우습게도 훨씬 더 적은 병력을 가진 와키자카의 기습 한방에 조선군이 제대로 된 싸움 한 번 못해보고 와해된다. 

 

와키자카의 전투 스타일을 살펴보면 특히나 기습을 좋아했던 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용인 전투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나름 왜군의 명장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드라마 징비록에 출연한 와키자카 야스하루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처참한 패배 한산도 대첩

용인 전투 한달 후 7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조선 수군을 저지하기 위해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와 함께 출정을 한다. 그러나 기습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성격과 공적을 탐하다가 단독 출진을 하게 되고 이때 한산도에서 이순신을 처음 만나 그야 말로 처참한 패배를 하게 된다.

이때 왜군의 수군 66척은 완전히 박살 났으며, 와키자카야스하루는 패잔병들과 함께 겨우 도망쳐 군량미 없이 무인도에 10일을 갇혀 있다가, 떠내려온 배의 잔해를 뗏목으로 만들어 탈출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자신의 패배를 처절하게 기록 했는데, “나는 성급했고 적장은 침착했다. 나의 전술은 단순했지만 그의 전술은 치밀했다. 나는 적장 앞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라고 전해진다.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후손 인터뷰 중

이후 와키자카 가문은 이 한산도대첩이 벌어진 날만 오면 전투에 패배하여 무인도에 들어가 해초만 먹은 야스하루의 패배의 순간을 기억하고 답습하지 않고자 미역만 먹는 가문의 풍습이 생겨났다고도 전해진다.

여튼 한산도대첩의 패배에 도요토미는 격노하였고, 당시 전투를 살펴본 감독관에게 와키자카에 대하여 물었는데, '적장이 워낙 출중했으니 다시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감싸주며 겨우 패전의 책임을 벗어났다.

 

와키자카 야스하루 초상화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한산도대첩 이후 임진왜란 참여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한산도대첩의 패배 이후로 제 2차 진주성 전투를 거쳐 1597년 수군 장수 도도 다카토라와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원균)을 섬멸하며 승전을 울렸고 남원성 전투에서 승전을 하는 등 명예회복을 하나 싶었다. 그러나 정유재란 발발 후 명량해전에서 다시 이순신 장군을 만나 패배하게 된다. 

 

진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남긴지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말하길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자도, 가장 미운 자도 이순신이다. 가장 좋아하는 이도, 흠모하고 숭상하는 자도 이순신이다. 가장 죽이고 싶은 이도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자 또한 이순신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패배를 여러번 당하고 나니 애증의 관계가 된 것이다. 


이후 제 1차 울산성 전투에서 가토 기요마사와 함께 공을 세우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는 소식에 후퇴하여 일본 본토로 돌아간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조선 정벌에는 실패 했지만 그 공을 인정 받아 땅을 하사 받고 영주가 된다.    

 

|임진왜란 이후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일생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마에다 도시이에가 대립하자 일찍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편에 들려 하지만 마에다 도시이에의 측근이었던 이시다 미쓰하리의 방해로 하지 못하고 몰래 뒤로 자신의 사정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전달하여 양해를 얻는다. 

 

이후 이시다 미쓰나리가 거병하자 어쩔 수 없이 서군에 합류한다. 이후 도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서군을 배신하고 동군으로 합류하자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시 함께 배신을 택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으로 합류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리로 모든 권력은 도쿠가와가 장악해 에도 막부 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이때 도요토미의 아들 히데요리를 치는 전쟁이었던 오사카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 야스모토를 대신 참전케 한다. 아마도 자신의 주인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죄책감이 아닐가 싶다. 

 

여튼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일찍부터 도쿠가와이에야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었고, 빠르게 도쿠가와 쪽으로 붙는 처세술로 자신의 영토 보존은 물론이고 영토까지 더 하사 받게 된다. 

 

그리고 1615년 자신의 적자 와키자카 야스모토에게 가문을 물려주고 교토에서 은거 생활을 하며 10년을 더 살다가 1626년 73세라는 나이로 사망한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그야말로 감각적인 처세술로 천수를 누린 것이다. 


와키자카 야스하루, 그는 이순신 장군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하며 단순히 적장에 대한 분노를 넘어 존경의 마음까지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도요토미의 7장수 중 한명이자 전세를 바로 읽고 도쿠가와의 세력으로 붙어 천수를 누린 정략적 판단과 처세술이 있던 인물이었던 만큼 그를 무참히 패배시켰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더 빛이 나는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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