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이순신이 인정한 바닷길을 읽는 전략가 어영담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2. 6. 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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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인정한 바닷길을 읽는 전략가 어영담 그는 누구인가? 

임진왜란이라는 말도 안되는 전쟁에서 나라를 구해낸 성웅 이순신,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 한명이지만 사실 그의 곁에는 조선의 훌륭한 장수들과 이름 없는 조선의 수군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남해의 바닷길을 한 눈에 놓고 판단하는 전략가 장군 어영담의 존재는 이순신 장군에게 그야 말로 천군만마였다. 어영담 그는 과연 누구일까?

 

불멸의 이순신에서 어영담

|어영담의 출생과 광양현감이 되기까지 

어영담은 1532년에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사실 어영담에 대한 기록이 불분명하여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수 없었으나 광양문화원의 연구를 통해 어영담의 과거 급제 문서 '방목'을 찾았고 1532년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지게 된다.

 

방목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나이 32살이 되던 1564년 무과에서 전체 11등으로 합격했으며 무과에 붙기 이전에 이미 음직으로 지금의 고흥군 여도진에서 수군만호로 특채된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내금위에서 적순부위(정 7품) 충무위 부사맹을 지낸 어심으로 알려졌는데, 타고난 무관의 가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어영담은 1580년 ~ 1582년 사천현감을 거쳐 1584년 ~ 1585년 무장현감 이후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을 만나게 되는 광양현감으로 1591년 3월에 부임하게 된다.

|어영담 광양현감으로 이순신을 돕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광양현감 어영담은 이순신의 휘하에 들어가 수로를 읽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영이었던지라 임진왜란 초기, 자신이 잘 모르는 경상도 해역의 지형과 물길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이때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어영담이었다. 어영담은 이미 영남의 바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이곳 지리와 물길을 완벽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와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잘 기록되어 있다. 

어영담의 귀신과 같은 이끎을 받아 큰 공로를 이룰 수 있었다. 얕고 깊은 바다속 상황과 무인도, 험한 암초 등을 다 알고 있어 수군이 영남 바다에서 왜군을 수색하고 토벌할 때 집안 돌아다니듯 했다. 그 때문에 위기가 없었고 전공이 가장 많았다.

-조경남 난중잡록-

이순신 장군은 또한 조정에 장계를 보낼 때 '호남 한쪽이 이제까지 보전 하게 된 것은 어영담의 힘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라고 표현까지 하였다. 어영담의 공로로 조선의 수군은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합포, 당포, 한산도, 부산포에 이어 1594년 제 2차 당항포해전까지 모두 참전하여 조선 수군의 완벽한 승리를 할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어영담 구명활동과 죽음

어영담은 백성을 사랑하는 장군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백성의 삶이 힘들어져 봄에 뿌릴 종자조차 없자 어영담은 이를 해결하려고 장부에 올리지 않고 양곡과 종곡 600여 섬을 따로 보관했는데, 이때 전란시 군의 기강을 확인하려 온 어사 임발영이 이를 발견하고 조정에 상소를 올려 어영담은 파직되고 만다. 

 

그러나 이 억울한 일을 광양에사는 백성 김두 외 126명이 상소를 올려 이순신 장군에게 알렸고 이순신 장군이 요청하여 광양현감을 잠시 유지할 수 있었지만 곧 이어 윤두수 등이 조정에 상소하여 다시 파직된다.   

 

이에 이순신장군은 그를 조방장(대장을 도와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조정에 다시 장계하였고 이를 승낙 받아 조방장으로 이순신 장군을 도우며 제2차 당항포해전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당시 조선 수군에 퍼진 전염병에 걸려 1594년 4월 9일 운명을 달리하고만다. 이때 어영담의 나이 61살이었다. 이순신장군은 어영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난중일기에 남겼는데, 다음과 같다. 

96년 4월 초9일(정사) 맑다. 시험을 마치고 방을 내어 붙였다. 비가 쏟아졌다. 어 조방장(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애통함을 어찌 다 말하랴. - 난중일기 -

이순신장군이 어영담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그 의 아들은 두명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대를 잇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해로를 읽을줄 알아 어영담은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책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담겨 있는 어영담의 이야기를 봤을 때 그 공훈이 대단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어영담에 대한 조사가 더 많이 진척되고 그의 모습을 표현한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왜군을 무찌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어영담이라는 인물이 있었음을 꼭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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