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의 부하였지만 이순신장군이 후계자로까지 생각했던 이운룡 장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자신이 아꼈던 부하 장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곧 잘 눈에 띄이곤 한다. 많은 부하 장수들 중에서도 특히나 원균의 부하 장수였던 이운룡 장군을 아꼈다고 전해지는데,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해전을 누비며 많은 공을 세웠고 후에는 제 7대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르기도 하는 인물이다. 장군 이운룡 그는 과연 누구일까?
|이운룡 장군의 출생과 임진왜란 전 행보
이운룡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0년전인 1562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남해현령을 지낸 이몽상이다. 이운룡은 야인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군대인 정로위에서 복무하다가 1584년 그의 나이 22세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운룡은 1587년 8월 지금의 함경도 녹둔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당시 조산만호이자 녹둔도 둔전관이던 이순신 휘하에서 함게 전투를 치뤘다. 즉, 이때 이미 이순신 장군과 이운룡 장군은 전투를 함께 해온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1589년 이운룡은 지금의 거제도 옥포에서 옥포만호로 임명된다. 이때 그의 나이 불과 27살 밖에 되지 않았다.
|원균의 휘하 장수로 공을 세운 이운룡 장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당시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원균의 휘하장수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이운룡이 옥포만호로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였던 원균의 소집 명령에 따랐던 것이다.
특히 이때 왜군을 피해 후퇴하려던 원균에게 "나라의 중책을 맡은 장수로서 강토를 사수할 것이며, 더욱이 이 지역은 남방의 주요 방어선으로서 최대의 관문입니다. 전라수군과 힘을 합쳐 왜적을 쳐부수어야지 도망은 직분과 국가에 대한 배신행위입니다"라고 말하며 항의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1592년 5월 7일 옥포해전에서 선봉장으로 나서 공을 세웠는데 이는 이순신 장군이 당시 옥포의 바닷길을 잘 아는 이운룡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후 이운룡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사천, 당포, 한산도, 안골포, 부산포 등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한산대첩 후에는 웅천현감으로 승진하였고 이후 1596년 이순신 장군의 천거로 경상 좌수사까지 오르게 된다.
사실 이때 조정에서 이순신에게 이순신에게 후임을 천거한다면 누구를 추천하겠냐고 물어보는 말에 이순신 장군은 이억기, 이순신(이순신 장군과는 다른 이순신), 이운룡을 추천했다고 한다. 여튼 이를 통해 이운룡은 34살의 나이로 경상좌수사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이운룡 장군
이운룡이 경상좌수사로 자리를 옮긴 후 당시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하면서 원균이 조선수군을 이끌었고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며 조선의 수군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된다. 이때 이운룡은 육지로 편출되어 육전을 하고 있어서 칠천량해전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원균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휘하에서 계책을 내었던 이운룡 장군의 부재가 치명적으로 다가 왔을 것이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1605년 제 7대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올랐고 공신 3등인 식성군에 봉해진다. 이운룡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르자마자 지금의 통영시에 위치한 충렬사를 세워 이순신 장군을 기렸고 이후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들은 꼭 충렬사에서 이순신 장군의 제사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이운룡은 이순신 장군처럼 타협하지 않은 강직한 자세로 조정의 탄핵을 많이 받았는데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뒤에도 잇따라 탄핵을 받았지만 그 능력이 출중해서 1607년에는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여진을 진압하고 이후 충청도 수군절도사까지 역임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나이 48살이었던 1610년(광해군 2년)에 또 다시 탄핵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지내다가 별세한다.
|이운룡 장군 평가
성품이 강직했을뿐 아니라 용맹했으며 이순신장군이 자신의 후임으로 지정할만큼 뛰어났던 장수 이운룡은 그만큼 많은 평가가 많았다.
먼저 이운룡은 함께 전투를 치른 명나라 장수 모국기가 선조와 이별하면서 '조선 수군에는 이운룡, 육군에는 정기룡 같은 훌륭한 장수가 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훌륭한 장수였다.
또한 난중일기를 살펴보면 원균의 부하였던 이영남과 함께 이순신장군을 자주 찾아 식사를 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운룡이 이순신 장군의 천거를 받아 경상좌수사에 오른뒤에도 이순신장군이 있는 한산도에 있으면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러 왔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이운룡이 다른곳으로 떠날 때에도 이순신장군은 이운룡에게 술을 잔뜩 먹여 하루라도 더 같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택당 이식(1584 ~ 1647)은 식성군이공묘비명에서 이운룡은 원균과 이순신 사이에서 공정한 마음으로 처신하며 누구편도 들지 않았고 그렇게 그를 중히 여겨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고 기록했고 이운룡이 경상좌수사로 승진해 원균 휘하에서 떠나면서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패했다고 기록 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을 그토록 존경했고 이순신 장군 역시 그토록 아꼈던 식성군 이운룡!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훌륭한 장수이자 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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