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왜군이 두려움에 떨었던 거북선 돌격장 이언량, 이기남 누구인가?
임진왜란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인물 이순신 장군과 그리고 배 한척 바로 거북선이다. 왜군이 복카이센(바다 괴물)이라 불릴 정도로 두려워했던 거북선은 조선 수군의 상징이면서 조선 수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배였다.
왜군을 휘저으며 무차별적으로 왜군을 수장시킨 거북선, 이 거북선에 탑승하여 왜군의 배를 박살내는 것을 지휘한 거북선의 돌격장 이언량, 이기남 장군이 있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귀선돌격장은 무엇?
귀선 돌격장은 말그대로 거북선을 이끄는 함장으로 철갑으로 둘러싸인 거북선이 해전에서 주로 돌격선의 역할을 하다보니 귀선돌격장으로 불린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총 3척 ~ 5척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당시 이순신 장군이 있던 전라좌수영에는 좌수영, 순천부, 방답진에서 만든 거북선 3척을 운용하고 있었다. 거북선이 처음 등장한 것은 난중일기에 따르면 사천해전으로 이때 최초의 돌격장은 이언량으로 알려져 있다.
|거북선 최초 돌격장 이언량
이언량은 최초 거북선 돌격장으로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1588년 무과에 급제해 처음 군인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거북선을 만드는데 참여했고 직접 지휘하며 돌격장으로 나선다. 우리가 익히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휘하 나대용과 함께 조선의 최고 군함을 만들어 낸 것이다.
- 이언량에 대한 임진왜란의 기록
1592년 5월 7일 옥포해전의 돌격장으로 왜군의 앞선 전함 1척을 총통으로 쏴 침몰 시키고, 6월 2일에는 이순신 장군의 군관으로 당포해전에 참여 공을 세웠다. 이후 6월 5일 당항포에서 거북선 돌격장으로 참여하여 왜의 배 2척을 불살랐다.
그리고 1592년 7월 8일 한산도대첩에서 이기남, 박이량과 함께 거북선 돌격장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웠고 9월 1일 부산포해전에서도 거북선 돌격장으로 공을 세운다. 이후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에서 적선에 포위된 명나라 장수 진린을 구해내던 중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언량은 공을 인정 받아 선무원종공신 1등에 훈록되었고 울산 충의사에 배향된다.
|한산대첩 좌귀선 돌격장 이기남
한산도대첩에는 거북선 2대가 출진한다. 좌우로 출진한 거북선 중 좌 거북선을 맡은 것이 바로 이기남이었다. 1553년 태어난 그는 무예가 뛰어나 1591년, 별시 무과에 1등으로 급제한 인물이었다.
- 이기남에 대한 임진왜란의 기록
1592년 6월 2일 당포 해전에 처음 거북선 돌격장으로 참가했으며, 7월 8일 한산에서는 좌귀선 돌격장으로 왜군의 배를 바다 한가운데서 잡아 왜군 머리 7급을 베었다. 뿐만 아니라 귀선돌격장 뿐 아니라 전쟁이 장기화되어 전라좌수군의 군량이 부족하자 둔전을 설치하여 군량 조달을 하였으며 1598년 순천왜교성 공방전에서도 참여하여 적선을 격파하고 적병을 참살하는 공을 세운다.
1605년 이언량과 함께 선무원종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이순신 장군과 그의 휘하 장수들에 대한 기록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목숨을 바쳐 적진을 누볐던 귀선돌격장에 대해서는 알려진게 많지 않다. 거북선이 임진왜란 조선 수군의 상징에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으로 비춰지는 배인만큼 이를 진두지휘했던 귀선돌격장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와 기록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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