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이순신과 함께 했지만 칠천량에서 전사한 전라우도 수군절제사 장군 이억기

윤여시 2022. 5. 22.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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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함께 했지만 칠천량에서 전사한 전라우도 수군절제사 장군 이억기 

임진왜란 초창기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과 함께 조선 수군의 승전보를 울렸던 인물이 있다. 바로 이억기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이 억울한 모함을 받을 때, 구명운동을 펼치며 함께 했던 장군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장군 이억기 그는 과연 누구일까?

 

불멸의 이순신 중 이억기

 

|이억기의 출생과 무관 급제

장군 이억기는 1561년, 한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선의 2째 왕인 정종의 후손인데, 정종의 10번째 아들이었던 덕촌군의 후손으로 왕가의 피를 이어 받은 인물이었다. 선조가 세종대왕의 6대손이니 이억기는 선조와 굳이 따지자면 14촌인셈이었으며 항렬상으로도 선조의 할아버지뻘이다. 

 

무예에 뛰어난 모습을 보인 그는 17살의 나이에 사복시(궁중의 말과 가마를 관리하는 관청)부터 근무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곧 무과에 급제하여 21세 나이로 종3품 경흥도호부사 자리로 관직을 시작한다. 여기서 경흥은 당시 조선 영토에서 4군 6진에 위치한 곳으로 두만강 유역에 자리 잡은 최전방이었다. 이때 경흥은 조선 국경을 넘어와 약탈을 자행하던 여진족과 맞닿아 있었는데 21살의 어린나이로 이곳 수비를 맡는다는 것은 파격적인 인사라 할 수 있겠다. 

 

|이억기와 이순신의 만남

두만강 너머 여진족을 격퇴하며 공을 세운 이억기는 26세에는 함경도 가장 북쪽 지역인 온성도호부에 발령이 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때 당시 온성중에서도 최전방에 있는 조산보에서 종 4품 만호자리에 있던 이순신 장군과 연이 닿은 것으로 보인다. 

 

이때 여진족에게 이순신 장군이 있는 녹둔도가 피해를 입은 적이 있는데, 이로 인해 이순신 장군이 그 책임을 물어 북변사 이일에게 체포가 되었다. 이억기는 이 소식을 듣고 이일에게 서찰을 보내 이순신을 구명해주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속 이억기

이억기는 1587년 순천부사로 임명되었고 1591년에는 전라우수사에 오른다. 이때 이억기의 나이 32세에 불과했다. 같은 때 경상우수사 원균이 53세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48세였으니 그의 나이가 얼마나 어린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년 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좌수사 이순신,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왜군과 맞서 싸우게 된다. 옥포, 당항포, 한산도, 안골포 등에서 연이어 승전을 거두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임진왜란의 초창기 전투부터 이순신 장군이 모든 조선의 수군을 통솔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순신 장군을 돕는 조선의 수군 장수들이 함께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그중 한명이 이억기인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오르자 이억기는 이순신 장군의 본영을 지원하는 등 함께 한다. 

 

대한민국 해군의 장보고급 잠수함중 하나인 이억기함

|이순신 장군의 구명활동과 칠천량 해전 그리고 전사

1597년 1월, 조정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선조의 무리한 진격 명령을 따르지 않자 이순신 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내려오게 하고 백의종군하게 한다. 이때 이항복, 김명원 등 대신들과 함께 이억기는 상소를 보내어 이순신 장군의 무죄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였다. 

그리고 1597년 7월 통제사 원균 휘하에서 조정의 무리한 진격을 요청 받고 출정하게 되는데 이때 미리 대기중이던 왜적을 공격한 칠천량 해전에서 패하며 원균, 최호 등과 함께 전사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그는 선무공신 2등에 오른다. 정조때에 이르러 시호를 받았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장보고급 잠수함 중 마지막번째 함정에 이억기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두번 백의종군을 하는 동안 이억기는 항상 이순신 장군의 억울함을 대신 해명하였다. 비단 이순신 장군과의 인연이 아니더라도 이억기 장군은 이미 어린나이부터 조선의 북쪽은 물론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남쪽을 지켰던 우리가 기억해야할 인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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