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현대

1212사태를 온몸으로 막아선 참된 군인 김오랑 소령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3. 10. 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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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사태를 온몸으로 막아선 참된 군인 김오랑 소령 그는 누구인가

1212사태 전두환의 쿠데타 군을 막아선 참된 군인 중에서 안타까운 희생을 한 대표적 군인이 있다. 바로 김오랑 소령이다. 그는 자신의 상관을 지키기 위해 홀로 문 앞을 지키다가 쿠데타 군의 총알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김오랑 소령 그는 과연 누구인가?

 

|1212사태 이전의 김오랑 소령 

1944년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난 김오랑 소령은 4남 1녀중 막내이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또래보다 1년 늦게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한 수재였다. 여기에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에 합격을 하였으나 학비로 인해 등록하지 못하고 이후 1965년이 되어서 육사에 들어간다. 

육사 졸업 이후 1969년 소위 이후 1970년 맹호부대 소속으로 월남 파병을 떠난다. 이때 당시 부산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던 아내 백영옥과 러브레터를 주고 받고 귀국 후 1972년 결혼했다. 1972년 육군3사관학교 교관, 1974년 제3공수특전여단 배치를 역임한다. 이후 육군대학 과정을 거쳐 소령으로 진급한 후 특전사로 복귀한다. 

여기서 김오랑 소령은 사실 특전사로 복무를 했고 육군 대학을 졸업한 후 후방지역에서 머물수 있었으나, 심각한 시력장애를 가진 아내의 치료 때문에 수도권에 머무르고자 했고 이후 1979년 3월 특수전사령부 행정장교로 당시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의 비서가 된다.

 

|1212사태 그 날의 김오랑 소령

1212사태를 일으킨 전두환과 쿠데타 세력은 반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울을 지키고 있는 육군특수전사령부를 반드시 장악해야 했고 당시 특전사령관인 정병주는 제거해야 하는 대상 중 하나였다. 이에 전두환은 제3공수특전여단을 불러 정병주 특전사령관 제압과 함께 지도부를 조기진압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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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오전 0시 15분, 당시 제3공수특전여단의 최세창 준장은 특전사령관을 급습하여 문앞에 다달아 정병주 사령관을 회유하려고 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해 자신의 부하인 박종규 중령과 그가 이끄는 10명의 체포조를 특전사령관실로 투입시킨다. 이때 정병주 장군을 홀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오랑 소령이었다. 정병주 사령관을 지키던 다른 장교들은 이러한 쿠데타 세력의 회유책으로 넘어갔지만 김오랑 소령만이 유일하게 남아 이를 거절하고 자신의 상관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김오랑 소령이 가진 무기는 권총 한자루에 불과했고 쿠데타세력은 M16을 들고 진입을 시도한다. 그리고 김오랑 소령은 결국 가슴과 배 등 6발의 흉탄으로 전사하게 된다. 참고로 이 작전을 지시한 박종규 중령은 김오랑 소령과 아파트 윗집 아랫집에서 살며 그 부인들 역시 절친한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영화 서울의봄에서 김오랑 소령 역을 맡은 정해인

|김오랑 소령 전사... 그 이후 

김오랑 소령의 시신은 특전사령부 뒷산에 암매장되었다가 이를 장교들이 항의하자 3개월 후 1980년 현충원으로 이장된다. 그러나 이러한 김오랑 소령의 죽음으로  부모는 홧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부인이었던 백영옥은 관사에서 쫒겨났다.

 

이후 자신들과 친하던 박종규 중령이 격발 지시를 한 것을 알고는 따졌지만 박종규 중령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라고 하자 백영옥은 "반란 일으키는 것을 명령대로 한 것이냐?"며 되물었다고 한다. 

1987년 서울의 봄 이후 백영옥씨는 자신의 남편의 명예를 바로잡고자 중령진급과 무공훈장 추서를 국방부에 요청했고 국방부는 1990년 김소령의 중령 진급을 추서한다. 그러나 이후 전두환, 노태우, 최세창, 박종규 등 소송을 제기하려 했으나 알 수 없는 외압으로 보류되었고 1991년, 자신이 운영하던 변사체로 발견된다. 미심쩍지만 사인은 실족사였다. 

여튼 김오랑을 사살한 박종규 중령은 소장으로 진급하긴 했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선 김영삼 정권의 하나회 숙청때 강제 예편 당하여 군인연금도 끊기고 살다가 2010년 12월 식도암으로 67세 나이로 죽는다. 자신이 죽기전, 1212에 참여했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1212사태 사망자 3명 중 한명인 김오랑 중령, 그는 자신의 상관을 홀로 남아 지켰던 참된 군인이었으며 민주주의가 군화에 짓밟힌 그 참혹한 역사의 순간을 막아선 위대한 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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