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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꾸민짓이구나 구속하라! 1212를 막으려 했던 김진기 헌병감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3. 11. 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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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꾸민짓이구나 구속하라! 1212를 막으려 했던 김진기 헌병감 그는 누구인가?

1212사태가 일어나던 날, 김진기 헌병감은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을 꽤 빨리 깨닫고 이를 막으려 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일촉측발의 상황!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의 구속을 명령했던 김진기 헌병감 그는 과연 누구일까?

 

1. 김진기 헌병감 출생과 군생활, 10.26사태의 김재규를 구속하다.

 

1932년 평안북도에서 출생한 김진기는 평양에서 보통학교를 졸업 후 6.25 직전 남한으로 내려와 육사9기로 입관한다. 이후 육관 간부의 교육과정 중 하나였던 갑종 6기로 재임관하여 군생활을 실시한다. 

 

6.25전쟁은 물론 베트남전쟁 등에 참전하고 1977년 헌병 중대장, 대대장을 거쳐 3군 헌병 참모, 그리고 헌병감실 차감에 이어 육군 헌병감으로 재직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김진기는 헌병과 인연이 깊었을뿐 아니라 헌병의 역할이나 임무 수행에 뛰어난 군인이었다. 

여기서 헌병은 군대의 경찰이라 생각하면 쉽고 그가 헌병감실 차감 그리고 헌병감에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군대의 경찰청장 자리라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그가 육본 헌병감 시절인 1979년 1026사태가 일어나자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사람이 김재규임을 알았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자신과 김재규가 있는 육군 벙커로 김진기를 불러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위장시킨 뒤 김재규를 체포한다. 

1026사태 이후 계엄을 선포하자 김진기는 치안처장으로 임명되었으나 당시 수사 책임을 맡고 있던 전두환이 온갖 정보를 독점하고 군의 보고체계를 휘저으며 월권을 부리자 이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보고하기도 한다.

 

2. 1212사태 때 김진기 헌병감은 무엇을 했을까?

김진기 헌병감의 실제 모습

 

전두환의 쿠데타 세력은 1212사태를 앞두고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물론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의 세력중 하나로 봤던 헌병감 김진기 세명을 전두환과의 약속이 있는것처럼 속여 1212사태가 일어났던 당일 연희동의 만찬장으로 유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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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육본지휘계통의 3명은 전두환이 초대해 놓고 나타지는 않았지만 술잔을 기울이며 전두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연희동 요정의 마담이 급히 들어와 김진기 헌병감에게 부관에게 전화가 왔다고 전한다.

 

그때 부관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하였고 이에 다른 두 장군과 함께 육군본부로 복귀한다. 김진기가 자신이 연희동 음식점을 가기전에 헌병감실에 연희동 음식점 번호를 알려주었기 때문에 바로 보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육군본부로 복귀한 김진기는 전두환의 유인책임을 깨닫고 쿠데타 세력이 전두환임을 예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전두환이 당시 최규하 대통령을 만나 정승화 총장을 강제 연행한 것에 대한 사후에 허락해줄 것을 종용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보고 받는데 그러자 김진기는 헌병 1대 소대병력을 요청하고 삼청동 총리공관에 경비를 보내기 위해 당시 자신의 부하였던 구정길 헌병 중령에게 전화를 걸어 전두환 체포를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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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하나회 병력들이 구정길 헌병 중령이 이끄는 경비 병력들을 무장해제 시키면서 전두환 체포 작전은 실패하고 자신의 헌병 병력을 도전해 최규하 대통령이라도 구하려 했지만 결국은 실패한다. 

3. 1212사태 이후 김진기 헌병감

 

전두환 체포에 실패하고 수경사로 cp를 옮겼지만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 중령에게 무장해제 당했다.

 

즉 군인에게 가장 치욕적인 하극상에 당한 것이다. 이후 국군보안사령부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1980년 예비역 준장으로 예편한다. 당시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를 유인했던 조홍 헌병단장도 그의 후임자로 불렸던 상황이라 김진기 헌병감은 그야말로 부하에게 치욕스러운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여튼 예편 한 후 김진기 헌병감은 수원에 있던 서울대 농대를 찾아 농사를 짓고 보문도에 가 1986년 광어 양식까지 해봤지만 실패했다. 이후 지정학을 연구하기도 했다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 한국토지공사 이사장을 역임했고 193년 정승화, 하소곤 등과 함께 전두환 쿠데타 세력을 고발한다. 이후 2006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전두환의 쿠데타를 눈치채고 헌병감으로서 체포까지 시도했던 김진기 헌병감은 1212쿠데타를 생각하며 평생을 악몽에 시달려왔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 평생을 큰 짐을 지고 살아야만 했던 인물중 한명이었다. 김진기 헌병감... 10.26사태의 김재규를 체포하고 12.12사태를 겪으며 정말 휘몰아치는 역사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 했던 군인 중 대표적인 인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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