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도망! 1212사태 당시 국방부 장관 노재현 그는 누구인가?
우리나라의 역사가 간발의 차이로 바뀌어 버린 단 하루. 바로 1979년 1212사태. 전두환과 군부 집단인 하나회의 쿠데타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만큼 변수도 많았고 쿠데타를 저지할 세력들도 있었다, 그리고 마음만 먹었다면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던 인물 당시 국방부장관인 노재현... 그는 사태의 해결 대신 도망을 선택했다. 그는 누구일까?
1. 노재현 국방부 장관이 되다
1926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노재현은 1947년 육사 3기로 임관을 시작하면서 군생활을 시작한다. 병과가 포병이었으며 포병 대대장으로 6.25참전 후 포병학교장, 육군군수사량관, 육군본부 감찰감 그리고 1972년 육군참모총장에 오른다. 즉 박정희 정권에서도 대우하는 장성 중 하나였던 것이다.
원래 육군참모총장 자리에는 월남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베트남전 한국군 사령관인 채명신이 유력했다. 그런데 채명신은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은 물론 독재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다가 군에서 예편되게 되면서 노재현이 육군참모총장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관운도 있었던 것, 여튼 3년후인 1975년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이후 1977년 전역 그리고 국방부 장관에 오른다. 이때 그의 나이 51세였다.
2. 노재현 1212사태 때 무엇을 했나?
- 배경
노재현이 국방부 장관이 된 지 3년 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암살 당하는 10.26사태가 벌어지고 우리나라는 유신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에 한 발 다가서게 된다. 그러나 이 기회를 포착한 전두환과 그가 이끄는 군부세력인 하나회는 군사 쿠데타인 1212사태를 일으킨다.
- 노재현 몸을 피하다
전두환과 하나회 세력은 자신들을 막을 수 있는 당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강제 납치하기 위하여 그가 있는 참모총장 공관을 습격하였고, 이때 총격전이 발생한다. 그런데 참모총장공관과 그리 멀지 않았던 국방부장관 공관에 있던 노재현이 이 총소리를 듣자마자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공관 후문을 통해 가족과 함께 피신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대한민국 서울 땅 그것도 군수뇌부가 있는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는데,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채 어떠한 연락도 하지 않은채 몸을 피한 것이다.
계획대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전두환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에게 정승화 연행에 대한 결재를 받고자 찾아간다. 그런데 최규하 대통령은 이는 국방부장관의 보고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거절하며 결재를 해주지 않는다.
전두환은 결국 다시 쿠데타 세력이 모여있는 경복궁 30경비단으로 돌아왔고 노재현을 찾고 있었지만 쿠데타 세력도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 전두환의 유인책에 속아 연희동 궁정에 모여 있던 수경사 장태완, 헌병감 김진기, 특전사령관 정병주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쿠데타 세력에 연행되었다는 것을 알고 쿠데타세력을 막기 위해 하나하나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노재현 국방부장관이 군사지휘권을 갖고 있었으므로 찾기 위해 노력 했지만 노재현은 어떠한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쿠데타 세력이든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세력이든 둘다 한 나라의 국방부장관이 총소리에 도망간 것은 생각도 못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일촉즉발의 상황, 3시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노재현
전두환은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쿠데타 세력을 이끌고 최규하 대통령에게 결재를 받으러 찾아간다. 그러나 최규하는 절대 국방부장관 없이는 결재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쿠데타세력은 노태우의 9사단에 1공수까지 출동시켜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장악해 놓는다. 그야말로 일촉측발의 상황이었던 것. 한편 이를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장태완 세력은 어떻게든 군을 모아 쿠데타 세력에 대항하려 했으나 하나회가 장악한 군 세력을 모으기가 여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노재현은 정승화가 붙잡힌지 3시간이 지난 후, 가족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육군본부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때서야 무슨 상황인지 보고를 받는다. 차라리 쿠데타여서 다행이지 만약 북한의 침공이었다면 군 수뇌부 없이 전쟁을 해야할 판국이었던 것이다.
노재현이 있던 육군본부는 1공수가 쳐들어올 수 있다는 말에 미 8군 사령부로 몸을 옮긴 후 미국의 힘을 빌어 전두환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 일마저 안되자 국방부로 다시 떠난다. 그리고 1공수가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장악하자 노재현은 이때 전두환이 있는 보안사령관실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전두환은 정승화 연행에 대한 결재를 하라고 노재현에게 요구했고 노재현은 이를 결재해준다. 그리고 동시에 노재현은 장태완 수경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싸우려 하지말고 내 지시에 따라 그만하고 병력을 철수 시켜"라고 말한다."
애타게 찾을 때는 없던 국방부장관이 이제는 명령이라며 병력을 철수 시키라고 하니 장태완으로써는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라야만 했다.
- 결국 1212 쿠데타의 성공
정승화가 연행되고 11시간 후인 12월 13일, 새벽 5시 노재현은 전두환의 요구에 따라 정승화 연행에 자신의 사인을 하고 최규하에게 결재를 받기 위해 찾아간다. 그러나 최규하 대통령은 정승화의 강제 연행에 대하여 허락을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노재현은 최규하에게 "죄송하지만, 일이 이미 터졌다"라는 말과 함께 허락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최규하 대통령은 결재를 하며 일이 모두 터지고 난 뒤 자신이 결재를 했다는 것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 보고서에 그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1979. 12. 13. 5:10분 이 사인과 함께 1212쿠데타는 전두환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노재현이 장태완의 편을 들었다면, 쿠데타 세력에게 명분을 주지 않았다면 역사는 또 모르는 상황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 노재현 국방부 장관의 이후 행적
이후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쿠데타가 끝나고 12월 14일 사퇴하였으며 전두환 정권에서 한국종합화학공업사장, 한국화학연구원 이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장을 지냈다.
우리나라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그는 자신의 1212사태 때 했던 태도에 대해서 언론이 비판을 하자 "1212사태가 전두환의 소행이 아닌 괴한 및 박정희를 암살했던 김재규의 세력이 정승화를 연행한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자리를 피한 것이며, 자신 역시 1212사태의 피해자" 라고 말한다. 이후 노재현은 2019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지금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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