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고려

고려를 향한 충신인가 왕을 시해한 반역자인가 고려 강조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3. 11. 2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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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향한 충신인가 왕을 시해한 반역자인가 고려 강조 그는 누구인가?

한 신하가 자신의 왕을 죽이며 반란을 일으키고, 적국에게 나라를 침공할 명분을 주어 끝까지 나라를 지키고 죽는다면 그것은 충신일까? 반역자일까? 여기 고려의 신하 강조가 있다. 자신이 앞장서서 왕을 시해하고 또 거란을 막기 위해 몸을 바쳤던 그, 거란의 신하 요구에도 목숨을 버릴지언정 타협하지 않았던 강조 그는 누구일까? 

1. 강조의 출생과 반란

고려거란전쟁에서 강조

 

고려 강조의 출생지나 태어난 연도는 알 수 없다. 이는 아마도 강조가 반역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사에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강조가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그가 서북면도순검사(도순검사: 특별히 벼슬을 내려 지방에 내려보내던 직급)로 자리잡고 있는 1009년이다. 강조는 당시 김치양이 자신의 아들을 세우기 위해 권력을 농단 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있던 고려 7대왕 목종의 요청을 받아 군사를 이끌고 목종을 호위하려 개경으로 떠난다. 

 

그러나 군대를 움직이고 있을 무렵 목종이 김치양 일파에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오해를 하게 되고, 개경으로 군대를 이끌고 향한다. 이때 강조가 목종이 승하했다고 생각한 이유는 두가지였다. 

 

1) 강조에게 위종정과 최창이라는 고려 조정에서 쫒겨나 불만을 갖고 있던 두명의 신하가 왕명을 보낸 것은 천추태후와 김치양 일파이며 강조를 유인하기 위함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여기에 본진으로 돌아가 군대를 더욱 크게 일으키라고 강조에게 말한다. 

 

2) 김치양 일파는 강조가 궁에 오는 것을 막으려고 모든 정보를 봉쇄하고 있었는데, 강조의 아버지가 자신의 종의 머리를 깎아 승려로 만든 다음에 '왕은 이미 죽었고, 간신들이 권세를 휘두르니 군사를 끌고 가라'는 편지를 지팡이에 숨겨 강조에게 전한다.

이에 강조는 목종이 죽었다는 사실에 자신의 부하장수인 이현운과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군한다. 그러던 중 지금의 황해도 땅, 그러니까 개경에 거의 다가서 목종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알고 멈칫했던 강조지만 결국 자신은 반역자로 죽을 수도 있었기에 부장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반란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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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결국 강조는 제 8대 왕 현종을 옹립하고 그대로 개경을 휩쓸었으며 김치양 일파와 그 아들을 모조리 죽인 후 천추태후와 목종 마저 유폐시켜 보냈다가 목종은 지금의 파주 적성면에 이르렀을 때 죽이게 된다. 다시 말해 어떨결에 일으킨 반란을 매듭 짓기 위해 자신에게 위험이 될 만한 사람들을 다 죽인 것이다. 

2. 제 2차 거란 침입과 강조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강조

 

강조의 정변은 호시탐탐 고려를 침입할 기회를 노리던 요나라에게는 너무나 좋은 명분이었고 요나라 성종은 자신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강조를 죽이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고려를 침공한다. 요나라 성종은 이미 자신이 침공한 송나라와 전연의맹이라는 조약을 맺은 상태에서 언제든 자신의 뒷덜미를 잡을 수 있는 고려를 치려는 계획인 것이었다. 

이에 강조는 자신이 요나라 군대를 정벌하겠다면서 총사령관으로 현종에게 군권을 받아 출정한다. 이미 강조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지라 군권 정도 받는건 일도 아니었다. 이때 고려 강조가 모집한 군대는 총 30만으로 요나라 군에게 뒤쳐지지 않았다. 강조는 여튼 자신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뒤에 물러나 있지 않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요나라를 상대하기 위하여 떠난다. 

뭐 강조야 자신이 반역을 일으키고 요나라에게 명분을 주었는데 자신이 직접 출전하지 않으면 모든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고, 여기에 자신이 군사를 아무나 줬다가 추후에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 수도 있었기에 강조는 자신이 직접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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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 현황

두산두피디아

요나라 군대가 국경지대였던 흥화진에서 대군으로도 양규에게 철저히 막히자 요나라 성종은 빠르게 개경을 쳐서 현종을 잡아버리고자 군대를 둘로 나누어 강조가 주둔한 퉁주로 진군한다. 이에 강조는 부대를 셋으로 나누었고 전면에 검차를 배치하여 첫 전투에서는 요나라 군대를 완벽하게 제압한다. 

이후에도 크고작은 전투에서 승리를 하기 시작한 강조는 점차 요나라 군대를 얕보게 된다. 이에 요나라는 빠른 기습을 통해 고려군을 공략할 전략을 세운 후 야율분노, 야율적로에게 군대를 이끌고 강조의 진영에 기습을 하게 한다. 그때 이를 보고 받은 강조는 '입안의 음식처럼 적으면 만족스럽지 못하다, 더 들어오게 하여라'라고 여유를 부리는데 요나라 군대는 생각보다 빠르고 강했고 강조의 진영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강조는 절망에 빠진다. 

고려사에는 이장면에서 강조에게 목종의 혼령이 나타났고 강조가 이를 보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전해진다. 여튼 이 통주 전투에서 강조와 자신의 부장 이현운은 요나라 군대에게 붙잡혔고 전사자는 3만이나 되었으며 여기에 수많은 장수들이 전사하게 된다.

3. 강조의 최후

통주전투에서 사로잡힌 강조는 자신이 나라를 망쳤다며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그런 와중에 요나라 성종이 강조를 심문한다. 심문 중에 강조의 모습에 호감을 느낀 성종은 고려를 버리고 자신의 신하가 되라고 말한다.

이에 강조는 '난 고려 사람이다 너의 신하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성종이 다시 한 번 신하가 되길 명한다. 그러나 강조는 이를 거절한다. 

성종이 강조와 함께 잡힌 이현운에게 자신의 신하가 되라고 말하니 이현운이 말하길 '두 눈이 이미 새 해와 달을 받는데 어찌 옛 산천을 기억하겠습니까?' 라며 요나라의 신하가 된다고 말하자 강조가 분노해 그 자리에서 이현운을 차고 '고려 사람이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라며 분노하자 요나라 성종이 강조를 그자리에서 죽인다.


강조는 참 역사적으로 파란만장한 인물 중에 하나였다. 자신이 쿠데타를 일으켰음에도 자신이 왕이 되거나 일인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나름 고려를 위해 일하려고 했다. 물론 이는 강조가 반란을 일으키자마자 거란과 싸워야 했으므로 하나의 가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강조가 자신이 결자해지하고자 목숨을 바쳐 싸웠다는점, 그리고 패배하여 요나라에 붙잡혀 배신을 제안 받았을 때도 당당하게 이를 거절했다는 점은 강조를 단순히 반역자로 보기에는 아쉬운 측면이 있다. 

물론 강조는 자신의 주군인 목종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귀양보내고 시해한 점, 그리고 목종에게 자신의 마음대로 시호, 묘호 등을 올려 버린 점 등은 분명 또 다른 평가의 영역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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