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고려

고려 9대 왕 덕종, 아버지 고려 현종 못지 않았던 성군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3. 12. 3. 14:17
반응형

고려 9대 왕 덕종, 아버지 고려 현종 못지 않았던 성군 그는 누구인가?

국운이 걸린 고려거란전쟁에서 승리한 후, 성군으로써 고려를 다시 일으켰던 고려 제 8대왕 현종, 하지만 하늘도 야속하지 현종은 불과 4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이어 받아 현종과 어머니 원성왕후의 장자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고려 9대 왕 덕종이다. 

1. 고려 9대왕 덕종, 1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다

고려거란전쟁 포스터

 

덕종은 현종의 장남으로 제3비 원성왕후 김씨의 아들이다. 1016년(현종 7년)에 타어났다가 2년뒤에 태자가 되었으며 현종이 치세를 펼치다 1031년 5월 세상을 떠나자 16세의 나이로 제 9대 왕으로 임명된다. 

 
2023.11.29 - [국사/고려] - 고려 현종의 부인으로 인천 이씨의 집안을 일으킨 원성왕후 김씨 그녀는 누구인가?

고려 현종의 부인으로 인천 이씨의 집안을 일으킨 원성왕후 김씨 그녀는 누구인가?

고려 현종의 부인 인천 이씨의 집안을 일으킨 원성왕후 김씨 그녀는 누구인가? 고려거란전쟁의 2차 칩입이 시작된 후, 고려 현종은 지방호족이었던 김은부의 딸을 3번째 아내로 맞아들이니 그가

yoosi0211.tistory.com

 
16세의 어린나이지만 덕종은 아버지에게 잘 보고 배워서인지 나이답지 않은 정치로 고려 현종 후기에 이어진 안정된 시국을 잘 이끌어나간다. 왕위에 오른 현종은 대사면령을 내려 죄가 가벼운 죄수들을 풀어주고 대신들에게 각 지방에서 올라온 말들을 나누어주며 인심을 얻었다. 

- 거란에게 외교 정치적으로 압박을 가하다! 주도권은 고려에게로

고려거란전쟁 3차침입에서 강감찬이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몰살시킨 이후 한동안 고려와 거란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거란의 성종이 죽고 흥종이 즉위하자 거란은 고려와의 국경지대에 다리를 만들고 보루를 쌓는 등 이상행동을 했다. 이에  덕종은 거란에 사신을 보내어 압록강에 무단으로 설치한 다리를 철거하는 것은 물론이고 억류해간 고려 신하들을 돌려 보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거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고려는 거란에 사절단 파견을 중지하는 외교 압박을 가한다. 거란은 사절단이 중지되었음에도 자신들의 사신을 보내려 했으나 고려는 이를 거부하고 다시 한 번 압록강 다리 철폐와 신하들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한다. 또한 삭주, 파천 등 거란족이 침입할 수 있는 곳에 성을 쌓고 전쟁까지 대비한다. 
 
그야말로 고려의 당시 군사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 고려 9대왕 덕종, 재위기간 3년 동안 고려의 위상을 올려놓다 

고려거란전쟁 현종의 두 부인

 

한편 덕종이 왕위에 오른지 1년이 지난 1032년 5월, 거란에서 후궁이었던 흥종의 어머니가 성종의 황후를 몰아내고 태후자리를 빼앗으며 살해까지 하려는 정변이 일어나자 옛 발해인들이었던 고진상, 왕광록이 투항했으며 거란의 중앙관료 출신들이 고려로 망명한다. 이에 덕종은 이들을 받아들였고 이후에도 거란에서 망명을 신청하는 인물들을 적극 받아들임과 동시에 이를 통해 거란의 내부사정을 파악했다.

덕종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거란에 대해 압박과 강경한 자세를 취하면서 한편으로는 방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거란의 정보들을 분석하고 반응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거란은 발끈하여 1033년 10월, 정주를 침략하였으나 고려군에게 박살이나 퇴각하고 이후 거란은 고려에게 군사적인 위협을 하지 못했다. 

- 안정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국내를 돌보다 

외침이 잦아들자 덕종은 성종때부터 꾸준히 성장해온 과거 출신의 능력있는 신진관료들과 함께 국내 정치를 돌봤고, 이때만큼은 고려도 안정적인 정국운영을 해나간다. 특히 덕종은 교육분야에 힘을 쏟고자 고려 제일의 교육기관, 국자감에 시험제도를 도입하여 더욱 능력 있는 사람들이 국자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이야 서울대 가려면 시험보고 경쟁하는게 당연했지만 이때만해도 권력있는 집안 자제들이 그냥 거쳐가던 국자감이었는데 이를 바꾼 것은 획기적인 고려만의 인재 양성 정책이었다. 

3. 3년의 짧은 치세 덕종 잠이 들다 

출처: 통일뉴스

 
아버지 현종의 뒤를 이어 즉위 3년만에 웬만한 왕 30년치의 일을 해낸 덕종은 1934년 19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몸이 약해졌고 끝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덕종은 자신의 아우였던 평양군 왕형에게 선위를 하였고 왕위에 오르니 바로 제 10대왕 정종이다. 
 
이후 고려 이제현은 <고려사>에서 덕종에게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덕종은 부모 상을 당하여서는 효를 다하였고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아버지의 하던 일을 고치지 않았으며, 원로들을 서놀, 왕가도, 최충, 황주량 등을 신임하여 조정에는 서로 기만하는 일이 없었다. 이 덕분에 백성들은 편안한 삶을 누렸으니 비록 봉항이 날아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시호에 덕을 붙이는 것은 앙연한 일이다' 

 
한편 이제현은 고려사에 기록된 덕종에 대한 평가 말고도 한가지 설화를 더 전했는데, '덕종 대에 위봉문에 봉황이 날아다녔는데, 까마귀가 울어대자 봉황이 귀찮아 날아갔다. 이후부터 고려 백성들은 봉황을 쫒아낸 까마귀를 보이기만 하면 활을 쐈고 덕종대에는 개성에 까마귀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고려 덕종은 개경 북쪽에 묻혔으며 능호는 숙릉이다. 덕종의 묘는 그의 아우 정종의 묘와 함께 2016년 발견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일제에 의해 모두 도굴 당한뒤였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아버지 현종에 뒤를 이어 3년의 짧은 재위기간 동안 고려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덕종, 그래서 더욱 현종과 덕종의 짧은 생이 안타깝기만하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오래 재위했다면 고려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기록되었을지 궁금해진다. 
 

불륜으로 세상에 나온 왕? 그러나 성군이었던 고려 제 8대 현종

불륜으로 세상에 나온 왕? 그러나 성군이었던 고려 제 8대 현종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항상 등장하는 대사, '사직의 존속을 보존'하고 '혈통'과 '왕위계승' 같은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

yoosi0211.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