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삼국시대

형수 때문에 왕위를 빼앗기고 최후를 맞은 고구려 발기 왕자

윤여시 2024. 1. 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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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 때문에 왕위를 빼앗기고 최후를 맞은 고구려 발기 왕자 

옛부터 왕위에는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없을 정도로 천륜을 끊는 욕망의 대상이었지만 아마 형수 때문에 왕위를 빼앗기고 복수하려다 실패한 역사 속 이야기는 세계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의 이야기일 것이다. 고구려 발기 왕자는 오늘 전할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형수 때문에 왕위를 어떻게 빼앗긴 것일까? 한 번 살펴보자 

1. 고발기 왕자가 왕위를 빼앗긴 이유

발기 왕자
드라마 <우씨왕후>에서 발기 왕자 역을 맡은 뱁우 이수혁

 

197년 5월, 재상 을파소를 등용하며 우씨왕후의 외척세력을 박살내고 중앙집권화를 이끌어왔던 고구려 9대왕 고국천왕이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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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인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였던 고구려의 여인 우씨왕후 우희 우리나라에서 남편이 달라지는데 왕후를 두 번이나 한 여성이 있다. 언뜻 들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지만 우

yoosi0211.tistory.com

 

우씨왕후는 이때도 아들이 없었고, 이는 곧 자신의 그나마 남아 있던 권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를 뜻했다. 우씨왕후는 급히 고국천왕의 죽음을 비밀로 부치고 왕위를 이을 다음 사람을 찾는다.

당시 고구려 사회는 '형사취수혼'이라는 결혼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는 형이 죽을 경우 아우가 그 형수를 책임지는 제도를 말한다. 이에 우씨왕후는 급히 고국천왕의 동생들을 찾았다. 둘째 발기 왕자, 셋 째 연우, 넷 째 계수가 그 대상이었다. 

- 발기 왕의 기회를 놓치다

우씨왕후는 먼저 서열이 가장 높은 둘째 발기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다. 

'나와 왕은 후사가 없으니 왕위를 이어야겠죠?' 

이에 발기는 왜 갑자기 늦은밤에 이러한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고 왕이 있는데 갑자기 이런말을 하는건 위험한 발언이라 생각했다. 이에 발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왕후이신 분이 이 밤에 혼자 다니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에 우씨왕후는 부끄러움을 찾지 못하고 셋 째 연우를 찾아간다. 셋 째 연우는 우씨왕후를 극진히 대접하였고 마침내 우씨왕후가 연우의 손을 잡고 궁으로 데려가 왕위에 추대하니 이가 바로 고구려 10대 왕 산상왕이다.  

 

여기까지 보면 마치 발기가 기회를 놓친 것처럼 보이지만 애시당초 우씨왕후는 발기가 아닌 연우를 왕위에 올리기로 염두에 있었을 것이고 발기는 명분용으로만 먼저 들린 것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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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발기 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치다

고구려

 

- 발기 고구려에게 복수하다

발기 입장에서는 황당했다. 하룻밤 사이에 서열 최고 순위었던 자신이 왕위를 빼앗겼으니 말이다. 이에 분노한 발기는 자기가 데리고 있는 장수와 병사들을 이끌고 궁궐의 성문을 감싸고 연우에게 나타나라고 했으나 연우는 3일 동안 성문을 닫은채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발기는 3일 동안 나오지 않는 동생을 하염 없이 기다릴 수는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고구려의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이 크진 않았던지라, 하는 수 없이 자신의 가족과 병사들을 데리고 요동으로 달아나 당시 한나라 태수인 공손도에게 의탁한다. 

 

그리고는 복수를 다짐하며 공손도에게 말한다.

'나는 고구려왕 고국천왕의 동생입니다. 나의 형수가 아우 연우와 짜고 의를 저버리고 왕위에 오르니 이때문에 분노하였지만 하는 수 없이 의탁하였습니다. 나에게 군사 3만만 내주면 고구려를 평정하고자 합니다.'

 

이에 공손도는 3만의 병력을 내주어 발기는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간다. 이에 산상왕 연우는 깜짝놀라 자신과 발기의 아우인 계수를 보내 이를 막게 한다.

- 발기의 최후

막내 계수는 마침내 발기와 맞붙는다. 그런데 후한의 군대는 고구려 장수 발기 밑에서 싸울 의지가 없어서 그런지 계수는 한나라 군대를 계속 쳐부쉈고 발기는 도망에 도망을 거듭했다. 이에 발기는 동생 계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어찌 이 형을 죽이려 하는가?'

그러자 동생 계수가 말하기를 

"연우 형님이 나라를 취한 것은 비록 의롭지 아니하나 다른 나라 군사를 이끌고 와서 우리나라를 치다니 이 무슨 행동입니까? 선왕들을 어찌 볼 것입니까?"

그 말에 발기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배천으로 달아났고 스스로 최후를 맞는다. 

이에 계수는 슬퍼하며 왕명을 받아 제대로 무덤을 만들고 장사를 지어주겠다고 생각하고 임시로 발기를 묻어 놓는다. 계수는 수도 국내성으로 돌아가 산상왕에게 발기의 죽음을 눈물을 흘리며 알렸다. 

그러나 산상왕은 반역자가 죽은 것에 안타까워 하는 것도 모잘라 임시로 묻어주기까지 했다는 말에 노하여 계수를 문책하니 계수가 말하길,  

"대왕이 왕위를 사양하지 않고 물려 받은 것은 형제의 의리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 왜 진노 하시는지를 모르겠으며, 대왕이 인자한 마음으로 형을 장사 지낸다면 모든 사람들이 대왕이 의리가 없다고 생각치 않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산상왕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계수에게 말하길 발기의 시신을 고이 모셔 장례를 치루라 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형수로 인해 왕위를 빼았기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고구려의 고발기 왕자,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수를 알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인물이었다. 고국천왕, 우씨왕후, 산상왕과 발기 왕자의 이야기는 당시 고구려의 결혼문화와 더불어 역사속 진귀한 이야기를 남긴 사례이며 드라마로도 제작된다고 하니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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