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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돌대가리 이석재, 그가 역사속 일으켰던 사건은?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4. 11. 1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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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이정재 동대문 사단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명으로 돌대가리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석재가 있다. 정치깡패가 주름잡던 암흑의 시기 그는 몇가지 사건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오늘은 야인시대 이석재 그가 일으켰던 굵직한 사건과 그의 인생에 대해서 조명해보려고 한다. 

 

야인시대 이석재
드라마 야인시대 이석재

1. 야인시대 이석재 그는 누구인가 

이석재는 1918년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1960년대 그가 나왔던 신문기사에 김두한과 동갑이기 때문에 알려진 것으로 정확히 그가 몇년에 출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동대문사단의 보스 이정재, 행동대장격인 유지광 등과 함께 이천 출신이다. 이정재의 사돈이 유지광이라면 이석재는 육촌 동생으로 이정재가 아우로 대하며 잘해주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이정재는 이천 후배 경무대 곽영주를 비롯하여 유지광, 이석재 등 자신의 동향과 혈육에게는 정말 잘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원작이자 이 당시 주먹들을 바탕으로 쓴 소설 <무풍지대> 등에서는 이석재가 총을 잘쏘는 명사수라고 표현되는데, 왜 그가 총을 잘쏘게 되었는지는 알려진바는 없지만 한때 헌병대 소속이었다는 것을 봐서는 이때 배운 총솜씨가 아닌가 싶다. 

2. 이석재가 관여한 사건 2가지 

이석재가 단순히 이정재의 육촌관계여서 동대문 사단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 주먹 세계를 뒤흔든 굵직했던 2가지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데 그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2.1 시라소니 집단 린치 사건 

당시 주먹세계의 최강자이자 세월이 지난 지금도 싸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시라소니 이상순은 당시, 남한으로 내려온 이북 출신 주먹들이 모여 만든 서북청년단의 보스이자 사기 캐릭터였다.

 

그는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온 이정재를 부산 깡패로부터 구해준 인연 덕분에 이정재와 친해지는데, 그러나 이후 동대문사단의 회장이 된 이정재에게 이후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았을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아우 대접을 하며 이정재의 심기를 거스리게 되고 이에 동대문의 불만은 점차 쌓여간다.

 

그럼에도 시라소니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부하들이나 지인들에게 돈을 쓰기 위해 동대문을 걸핏하면 찾아와 상납을 요구하게 되고, 참고 있던 이정재와 그의 부하들은 마침내 분노가 폭발하게 된다. 

이정재의 동대문사단은 일당백 시라소니를 잡기 위하여 시라소니를 동대문 사단의 사무실로 유인하여 들어오게 한 후 집단 린치를 가할 계획을 세운다. 이때 행동대장급으로 이석재를 비롯한 12명이 사무실에 잠복해 있었고 시라소니가 들어오자 불시에 각종 몽둥이와 무기들로 기습하여 시라소니를 집단 린치했다. 아무리 시라소니더라도 13명의 조폭들이 무기를 들고 덤비니 막아낼 순 없었던 것이다. 

이후 수시간 몽둥이로 맞아 반죽음이 되어 기절한 시라소니를 들고 동대문 사단은 병주고 약준격으로 병원으로 데려간다. 그런데, 이석재는 병원에 데려다준 시라소니가 재활을 하고 다시 자신을 공격할 것을 우려하여 시라소니가 입원해있는 병원 환자실로 찾아가 시라소니의 왼쪽 정강이를 부숴 버리는 잔혹한 범행을 다시 한 번 저지른다.

 

이것이 바로 시라소니 집단 린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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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단성사 김동진 저격사건 

6.25가 끝나고 당시 주먹들은 먹을거리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눈독을 들인 것은 바로 전쟁 후 미군의 물자를 독점으로 입찰하고 판매하여 수익을 보는 사업이었다. 

이 당시 동대문사단 역시 갓 만들어져 몸집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주먹들과 힘을 합하여 이 사업을 진행하는 단체에 속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김두한이 조직하고 그의 부하 김관철이 운영하는 건중친목회였다.

 

이정재 역시 건중친목회에 소속되어 있는 조직으로 이 사업을 총괄 운영할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동대문사단의 초기 행동대장을 맡고 있던 자신의 부하 김동진과 이석재를 건중친목회에 파견 개념으로 보내게 된다. 

그런데 김동진은 욕심이 생겼는지 건중친목회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익을 뒷돈으로 챙기며 이정재에게는 이익을 얼마 보내지도 않았으며, 여기서 나오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별동대를 강화하기까지 이르렀고, 동대문 사단을 나가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또한 그러면서 큰 사고를 저지르게 되는데 바로 이정재가 자유당에게 지시를 받아 김동진 자신에게 암살 명단으로 주었던 40명의 야당정치인, 언론인 등의 명단을 언론에 폭로해버린 것이다.   

이정재 입장에서는 이는 엄청난 배신이자 위기였다. 이정재는 하루빨리 김동진을 없애려고 했지만 김동진이 잠적해버려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당시 종로의 대표 극장이었던 <단성사>에서 서부 영화 <황야의 무법자>가 개봉한다는 소식을들은 이정재 동대문사단은 영화광으로 알려진 김동진이 반드시 극장으로 올 것이라는 것을 캐치하고 이석재와 유지광 등을 보내 권총으로 김동진을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역시나 예상대로 김동진은 영화를 보기 위해 단성사를 찾았고,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김동진에게 이석재가 불러 세운 후 총을 쏜다. 김동진은 오른쪽 허벅지를 맞으며 쓰러졌고, 이석재는 그자리에서 헌병에게 붙잡힌다. 한낮의 말도 안되는 이 총격 암살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당시 신문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고 여론에 밀린 검찰은 신속히 이석재와 그 배후에 있는 이정재를 구속한다.

 

그러나 경무대 곽영주와 자유당 정권의 비호 아래 이정재는 바로 석방되었고, 이석재는 현행범이므로 어쩔 수 없이 구속했다가 1년반 정도 편안한 감옥생활을 하며 구속되었다가 풀려나게 된다. 

참고로 김동진은 8개월여를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 사건 이후 어둠의 세계를 떠나 은퇴한다. 

 

동대문파 이석재
동대문파 모습 왼쪽 뒤에서 세번째 인물이 이석재, 참고로 앞에서 두번째 인물이 이정재이다.

3. 이석재의 이후 행적

김동진의 저격 사건 이후 그의 뚜렷한 행적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후 동대문 이정재가 사형을 받은 후, 감옥에 있다 석방되어 조직세계를 떠나 고향 이천에서 지역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유지광과 비슷한 사례로 유지광이 감형으로 겨우 살아남아 이천으로 내려가서 지역활동과 봉사활동 등을 한 발자취를 볼 때 가장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다. 

이후 1988년 유지광의 장례식에서 이석재가 조문을 왔다는 신문들의 기사가 있으며 이를 보았을 때 유지광과 지속적인 인연을 갖고 이천에서 살아갔음을 추측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야인시대 이석재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사실 그와 관련해서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암울했던 시기 남겼던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가 얼마나 암울했고 질서가 혼란스러웠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속에서 이석재의 캐릭터를 볼 때는 그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어두웠던 우리 현대사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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