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현대

드라마 정년이 강소복(라미란) 실존인물 여성국극 임춘앵 그녀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4. 10. 1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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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년이 강소복(라미란) 실존인물 여성국극 임춘앵 그녀는 누구인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공연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여성국극을 주제로한 드라마 <정년이>가 방영된다. 아무래도 실제 있었던 일을 고증해서 풀어내는만큼 여성국극이라는 배경지식과 등장인물들에 대해 알고 보면 더욱 드라마를 재미있게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오늘은 여성국극은 무엇이고, 극중 여성국악인들을 모아 최고의 여성국극단을 차린 정년이의 후원자 강소복(라미란)의 실존 인물 임춘앵은 누구인지 알아보려 한다. 
 

&lt;정년이&gt;에서 임춘앵을 모티브로한 강소복 역의 라미란

1. 여성국극이란? 

정년이는 1950년대, 전성기를 이루었던 여성국극을 배경으로 한다. 여성국극은 남장연기, 연애서사, 창과 무용은 물론 마치 지금의 뮤지컬처럼 무대장치와 화려한 의상등으로 이루어진 연극을 말한다. 
 
해방 이후 여성들끼리 모여서 하였던 창극에서 진화한 형태로 특이하게 당시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하고 작품을 만들어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는 남자 국악인들에게 푸대접을 받던 여성국악인들이 반발하여 단체를 만들며 시작되었고 '여성국악동호회'라는 첫 여성국극 단체가 만들어지면서 그 막이 오른다. 

특히 이들의 <햇님과 달님>이라는 공연은 그야말로 대성공으로 예술적 가치는 물론 당시 수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었고, 이러한 배경속에 <여성국악동호회>와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체인 '여성국극동지사'라는 단체를 임춘앵이 만들면서 바야흐로 여성국극의 전성기를 만들어낸다. 

 
여성국극은 남장여자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등장인물을 통해 당시 여성들이 그리는 남성상을 만들어냈으며 마치 지금의 로맨스 드라마처럼 말초적이고 감성적인 대사들을 만들어내며 큰 인기를 끌어낸다. 

1.1 여성국극의 몰락

여성국극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여성국극이 인기를 끌며 수준도 되지 않는 여성국극단체들이 난립하기 시작했고 여성국극의 멤버들은 훈련도 되지 않은채 무대에선다. 이로 인해 여성국극은 점차 관객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으며 점차 변두리 극장에서 돌다가 사라지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국극을 이끌어오던 임춘앵의 남편이 죽고 여러 개인사들이 겹치면서 더이상 작품을 내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기존의 진부한 레퍼토리만을 그리는 작품성 저하가 뒤따르게 된다. 또한 영화의 배급 및 국산영화의 등장 TV와 라디오의 발달은 여성국극 몰락의 주요 원인이되고 10년이라는 전성기를 뒤로 하고 이후부터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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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성국극을 대표하는 임춘앵 그녀는 누구인가? 

2.1 임춘앵의 성장과정 

임춘앵의 어린시절은 그야말로 음악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야금 등을 잘다루는 국악인이었으며 이를 통해 쉽게 각종 악기는 물론 창을 배운다. 또한 아버지의 인맥을 통해 수많은 엘리트 명창과 명인들에게 창, 판소리 등을 교육 받으며 그녀의 물려받은 재능은 더욱더 갈고 닦이게 된다. 

그녀는 이미 18세때부터 일제시대, 마치 지금의 국립극장으로 불리는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창과 무용을 함께하는 발표회를 열었으며 당시 최고의 국악인들을 모아놓은 조선창극단 단원으로 들어간다. 

2.2 임춘앵 여성국극에 발을 들여놓다

당시 창극을 중심으로 하던 조선창극단이 있었지만 해방 이후 창극이 남성 국악인들의 전유물이 되면서 상대적으로 여성국악인들은 무시를 당하게 된다. 그러자 여성국악인들은 이러한 현실에 반발했고 이는 여성들만의 단체인 여성국악동호회의 창립의 배경이 된다.

그리고 이 여성국악동호회의 작품에서 여성국극의 주요 포인트인 남장여성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창극이 만들어졌고 단순히 창만 부르는 것을 넘어 각종 연기와 무용등이 가미되며 우리만의 개성있는 여성국극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바로 임춘앵 역시 이 여성국악동호회의 일원으로서 활동을 하게 된다.

여성국악동호회가 점점 입소문을 타며 흥행을 끌던차에 고전 전래동화인 <햇님과 달님>이라는 당시에는 참신했던 소재가 히트를 치면서 여성국극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여성국악동호회의 이러한 성공은 내부의 불만과 반목을 낳게 되고 당시 여성국악동호회의 또 다른 구심점인 김주전이 선의로 경쟁할 수 있는 여성국극단체 하나를 더 만들자고 임춘앵에게 제안하면서 <여성국극동지사>가 탄생하게 된다. 

사실 임춘앵은 히트작인 <햇님과 달님>에는 참여를 하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었던 상황이었고, 그래서 김주전의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드리게 된다. 이후 첫 작품인 <황금돼지>에서 왕자로 출연하게 되고 역시 히트를 치면서 여성국극이야 말로 자신이 갈길임을 직감하게 된다. 

 
여성국극은 소리를 위주로하는 창극과는 달리 다양한 춤과 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임춘앵은 이에 딱 적합했던 인재였던 것이다. 임춘앵은 다른 창극과는 달리 연극을 보듯 자연스러운 연기에 삼고무까지 추는 춤솜씨 그리고 남성연기가 빛을 발하면서 전국 지방순회공연을 하며 입소문과 함께 항상 만석을 기록하게 된다. 

2.3 임춘앵 우리나라 여성국극을 대표하다 

임춘앵의 여성국극은 점점 그 개성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1950년 임춘앵과 함께 여성국극동지사 설립에 앞장섰던 김주전이 햇님창극단이라는 또 다른 새로운 여성국극단을 창단하면서 이제 임춘앵은 여성국극동지사의 실질적 리더가 된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임춘앵과 여성국극동지사는 광주로 옮겨 <황금돼지>를 이을 신작을 준비하였고 1952년 <공주궁의 비밀>을 광주무대에 올린다. 전쟁중임에도 수많은 관객들이 몰렸고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대사들로 구성하며 그야말로 흥행이 폭발한다. 
 
이후 <여의주>, <바우와 진주목걸이>, <구슬공주>, <원본 춘향전> 등의 작품을 연달아 올리기 시작하고 여성국극은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했으며 여성국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일약 스타가 된다. 일례로 지금의 사생팬들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3. 쇠퇴하는 여성국극과 임춘앵 

임춘앵 실존 모습
임춘앵 실존 모습

 
임춘앵은 여성국극을 대중예술로 자리잡게 만들며 <무영탑>, <아사녀> 등의 엄청난 작품들을 쏟아낸다. 임춘앵은 전후 직후 관객들의 마음을 잘알고 있었고 걸출한 작품을 쏟아내기 시작하며 이와 함께 후진 양성과 다양한 스토리 개발을 위해 힘쓴다. 

그러나 여성국극과 임춘앵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여성국극이 흥행된다고 하니 너도나도 여성국극단체를 조직하고 전국에 20여개에 가까운 여성국극단이 생겨난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발전한 여성국극에 대한 인재풀이 적었고, 무대시설이나 분장 등도 허접해지면서 퀄리티가 낮아진다.
흥행성 하나 없는 진부한 스토리들이 판을치면서 관객들은 여성국극을 외면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임춘앵 개인사도 복잡해진다. 1955년 남편 신대우 사망과 함께 1957년 조카 김진진, 김경수, 김혜리 등이 임춘앵을 떠나 자신들만의 여성국극을 추구하면서 충격도 커진다. 이후 1959년~1961년까지 고작 5편의 작품을 올렸으며 이마저도 실패를 하게된다. 임춘앵은 그자체로 여성국극의 역사였기 때문에 그녀의 슬럼프는 여성국극의 쇠락을 가져왔고 한국 영화의 등장은 이를 더욱 가속화하며 여성국극은 10년도 채 되지 않아 무너지고 만다. 

이후 임춘앵은 후진 양성 등에 힘쓰다가 1968년 은퇴를 선언하였고 1975년, 52세라는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한다. 


세계 역사상 이렇게 빠르게 한 문화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또 이렇게 빨리 사라진 문화의 유래를 찾기가 힘든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여성국극은 분명 큰 가치가 있는 우리의 특별한 대중문화사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여성국극의 중심이자 그 자체가 역사인 임춘앵이라는 인물은 그만큼 대단했던 거장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번 TVn 드라마 <정년이>에서 라미란이 연기하는 강소복이 바로 임춘앵을 모티브로 한만큼 이를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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