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현대

영화 <밀정> 공유(김우진)의 실제 모델, 의열단원 김시현 독립운동가 이야기

윤여시 2024. 11. 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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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에서 배우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 역은 독립운동가 의열단원 김시현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김시현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사실 그는 의열단의 핵심 인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한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국회의원 그리고 이승만의 암살 시도에도 영향력을 끼친 인물 중 하나이다. 오늘은 영화 <밀정> 공유(김우진)의 실제 모델, 의열단원 김시현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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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 공유(김우진)의 실제 모델, 의열단원 김시현

1. 김시현의 출생과 성장 

독립운동가 김시현은 조선을 향한 외세의 침략이 가속화되기 시작하던 1883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렸을 적, 모습에 대해서는 기록이 많지 않지만 그의 젊은 시절 발자취를 보면 당시 상당한 수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16세인 1898년 서울 종교의숙에 중학과정을 졸업한 후 지금의 화성 근처에서 잠시 숙부 소유의 농장을 관리하며 장사를 하기도 했다. 이때 그는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 등과 교류를 하며 그의 독립의식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잠깐의 장사 생활을 접고, 자신의 큰 꿈을 위해 29살이 될 무렵에 일본 메이지대학의 법학과를 입학하고 그리고 5년 뒤인 1917년 일제 강점 치하에 있는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온다. 당시 조선인이 잠깐의 중학과정을 거치고 메이지대 법대를 간다는 것은 그의 능력이 남달랐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여튼 그는 일제치하의 조선으로 돌아와 예천에서 인쇄업을 하고 그가 번 돈과 가문의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한다. 그러던 중 1919년 3.1운동이 터지자 안동의 만세운동에 참여해 활동하였고 체포되어 구금되어 2개월 정도 있다가 풀려난다. 이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1.1 의열단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을 하다

1919년 만주 길림으로 망명한 김시현은 김좌진의 독립군정서 간부 활동을 하다가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 활동에 투신한다. 의열단은 한반도를 불법 강제 점거한 일제 및 친일파 요인 암살, 일제의 주요기관 파괴 등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에 헌신하고자 하는 단체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독립운동비밀조직이다.

이후 그는 국내에 몰래 잠입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원들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모으는데 집중한다. 이를 통해 김좌진의 청산리 전투에도 자금을 대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데, 이후 폭탄 및 무기 등을 곡물로 위장해 밀양 지역에 숨겨 놓았다 발각되어 다시 옥살이를 하지만 이후에도 거침 없는 독립활동을 펼쳐간다. 

뿐만 아니라 상해임시정부에 소속되어 극동혁명단체대표대회 한국대표로서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외교위원으로 외교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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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밀정>의 배경 '황옥의 제2차 무기 반입 거사'

1922년 그는 영화 <밀정>의 배경으로 알려진 '황옥 제 2차 무기 반입 거사'를 획책한다. 당시 경기도 경찰 고위 간부였던 황옥을 포섭하여 조선총독부 등 주요기관에 폭탄을 투척해 일제에 큰 타격을 주고자 했던 이 계획은 거의 성공하나 싶었지만 밀정의 밀고로 인해 발각 되게 된다. 

당시 이들이 반입하려던 폭탄은 위력과 크기에 따라 수십종이나 되었고 조선총독부 등의 주요기관 공격과 함께 독립에 대한 선언을 낭독하려던 선언서까지 함께 있었다. 그 규모를 봤을 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법한 규모였다.    

이 사건으로 김시현은 징역 10년을 선고 받고, 옥에 갇혀 단식으로 독립운동을 이어나가지만 김시현의 아버지가 면회를 찾아와 더 큰 독립 운동을 놔두고 단식을 계속 이어나가면 나 역시 지금 당장 죽겠다고 말하여 단식을 끊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여튼 이후 형이 조금 감면 되어 6년을 감옥에서 지내다가 1929년 석방된다. 독립운동의 대부분을 옥에 갇혀서 보낸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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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김시현의 끝없는 독립 투쟁

그는 석방되자마자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만주 길림으로 항하여 독립운동을 하다, 1931년 일제가 만주에도 영향을 끼치자 천진 지역에서 김원봉이 군사학교를 만든다는 소식에 김원봉과 합류한다. 이후 1932년 남경 의열단이 중심이된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를 설립하고 생도 모집에 앞장섰으며 이때 모집한 1호 생도가 우리가 잘알고 있는 독립운동가 시인 이육사이다. 

의열단 북경책임자 역할을 맡아 중국정부와 함께 일제에 맞서 활동하던 김시현은 1934년, 자신의 의열단 동지중 한명인 한사평이 밀정이란 것을 알아내고 처단했다가 붙잡혀 5년 형을 선고 받고 또 옥에 들어간다.    

이 사건을 재판하던 일제 재판부가 김시현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며 모욕하자 김시현은 바로 반발하며 일제에 독립운동을 하기 위함이며 타협하지 않고 그 어떤 중형도 두렵지 않다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으며 일제 검사가 고문을 통해 강한 심문하자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를 버티려고 혀를 깨물다 혀가 손상되어 후에도 발음이 좋지 않았을 정도라고 한다.  

이후 석방되어 1939년에도 또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투옥되고 다시나와 북경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다가 또 붙잡혀 옥고를 치루다가 1945년 해방이 되면서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의 나이 62세였다. 절반에 가까운 세월을 독립운동에 대한 옥살이로 보낸 것이다. 

독립운동가 김시현 실제모습
독립운동가 김시현 실제모습

3. 이승만 대통령 암살사건을 계획하다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은 김시현은 귀국 후 여러 단체의 회장을 역임하였고, 우리나라의 최초 야당인 민주국민당의 고문으로 활동한다. 이후 196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안동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가 국회의원에 있을 때, 이승만의 독재를 위한 개헌과 불법, 부패 등이 극에 달하자 김시현은 분노하기 시작했고 이는 이승만에 대한 암살 시도로 이어지게 된다. 그는 같은 의열단 출신인 유시태를 포섭하고 거사하기로 계획한다. 

1952년 6월 25일, 6.25전쟁이 일어난지 2년이자 아직 전쟁 중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멸공통일대회가 열린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다는 것을 안 김시현은 유시태에게 자신의 신분증과 정장을 주고 행사장에 들어오게 한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연설 중 유시태가 약 3m 거리에서 뛰어나와 이승만에게 권총을 발사한다. 

그러나 권총이 갑자기 몇번이나 불발되며 저격에 실패하였고 현장의 경호원들에게 제압되며 유시태 및 김시현은 긴급 체포되었다. 

3.1 재판 과정에서 김시현의 답변

이승만 대통령 암살시도 이후 많은 언론들이 김시현을 포함한 주모자들의 재판에 촉각을 세운다. 

재판 과정에서 김시현은 이승만대통령을 독재자로 표현하고 6.25전쟁을 북한이 준비하는 동안 대처하지 못한 직무유기를 비롯했고 서울을 버리고 도망간 것과 각종 6.25전쟁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 등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을 암살하면 그 후 누구를 대통령으로 삼으려고 했냐는 질문에는 ' 그런 사람은 없으며, 누가 되어도 이승만 대통령보다는 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김시현과 유시태는 모두 고등법원에서 사형이 선고 되었으나 이후 항소하여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후 4.19 혁명이 일어나 석방되고 같은 해 다시 한 번 무소속으로 안동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5.16군사쿠데타 이후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했지만,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고 6년 뒤인 1966년, 가난에 여러 셋방을 전전하다가 그의 나이 83살에 별세하였다. 묘는 경북 예천에 위치하고 있다. 

4. 독립운동가 김시현.. 아직도 그는 서훈을 받지 못했다

평생을 독립에 몸바친 김시현은 나라로부터 아직 그 어떤 서훈도 받지 못했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 암살 시도가 주요 이유로 지금처럼 역사를 정치로 바라보며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이후에도 서훈이 내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평생을 독립운동을 위해 싸우고 옥에서만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며 해방 이후에도 나라를 생각했던 인물 김시현 단순히 영화 <밀정>속에서 그려지는 것을 넘어 그의 일생 하나하나가 더 많이 후손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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