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극 작품들은 많지만, 드라마 <원경>에서는 이방원의 아내이자 정치적 동반자로서 함께 했던 원경왕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기존의 이방원과 관련된 드라마와는 달리 이방원과 원경왕후의 갈등이 더욱 주목 되고 있는 가운데, 극 중에서 원경왕후의 몸종으로 이방원의 후궁자리까지 올라간 채령이라는 인물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실제 역사속에서도 원경왕후의 몸종에서 이방원의 후궁자리까지 오르며 많은 자녀를 낳은 신빈 신씨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과연 실제 역사속에서 그녀는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드라마 <원경> 실제 역사! 원경왕후와 태종 이방원 관계는? 그녀의 죽음은?
2025년 새해 첫 사극으로 방영될 드라마 은, 수없이 많은 드라마로 제작된 이방원과 관련된 내용에서 약간 벗어나 그의 아내인 원경왕후에 대하여 조명할 예정이다. 실제 역사속에서 원경왕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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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빈 신씨의 출생과 성장
1377년 신빈 신씨는 지금의 영월에서 검교 공조 참의 신영귀의 딸로 태어난다. 여기서 검교란 임시로 증원한 한시직 벼슬에 붙였던 말로 공조참의에서 공조는 지금의 국토교통부라고 생각하면 좋은데 그곳에서 참의는 수장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따라서 임기직 비서 쯤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여튼 신빈 신씨는 일찍이 궁으로 들어와 원경왕후가 데리고 있던 후궁으로 궁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1 신빈 신씨 이방원의 눈에 띄다
신빈 신씨가 어찌하여 이방원의 눈에 띄고 성은을 입었는지 정확하게 역사에 기록 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우리나라 역사속에서 이방원만큼 권력욕을 가진 인물이 없던 만큼 이방원은 왕이 되자 원경왕후와 그 외척 세력이 왕권을 위협한다는 판단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태종은 더 많은 후궁을 통해 왕위를 이을 왕자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외척을 견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원경왕후의 입장에서는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위험을 함께 이겨내었고 사랑이든 정치적이든 모두 함께 해왔던지라 이방원의 이 같은 태도변화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이방원이 이미 왕자시절에도 원경왕후의 몸종과 하룻밤을 보내 아들을 얻었던지라 원경왕후의 불안은 더해만 갔다.
그럼에도 이방원의 후궁 들이기는 계속된다. 이방원은 자신이 죽인 이방석의 어머니 신덕왕후 강씨의 시비를 후궁으로 들여왔고 여기에 원경왕후와 사이가 멀어지고 있는 와중에 원경왕후를 모시던 나인 신빈 신씨를 후궁으로 또 맞이한다.
2. 신빈 신씨 이방원의 사랑을 독차지한 여성
신빈 신씨는 이방원이 많은 후궁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이는 이방원의 부인중 원경왕후보다도 많은 3남 7녀의 자녀들을 낳았다는 점이 증거이다.
1414년 태종 14년에 아들 함녕군을 낳은 신빈신씨는 신녕옹주라 불리게 되었다. 다만 신빈이 낳은 함녕군이 1402년에 태어났으므로 태종의 아들을 낳고도 10년 동안 아무 직위 없는 궁녀의 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신빈 신씨는 이방원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원경왕후가 죽자 당시 궁중 안의 일을 도맡아 하는 내명부의 책임자가 되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 태종이 자신의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태상왕으로 있으며 몸이 아플 때 신빈 신씨가 지극정성으로 보필하니 세종이 그 정성을 보고 신녕궁주로 높여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다만 실제 역사속에서 신빈 신씨와 원경왕후의 사이가 어떠했는지는 자세히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세종 역시 그녀를 높여 불러줬다는 점에서 그리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2.1. 신빈 신씨의 권세
신빈 신씨에 대한 이방원의 사랑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세월이든 권력자를 찾아 몰려드는 날파리 떼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1418년 세종 1년, 신효창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죄를 면하고자 노비 50명을 바치며 신빈 신씨에게 청탁을 했으나 신빈은 '전하께서는 여자의 청탁을 받지 않는다.; 며 거절 하였다.
"오마지라는 인물이 사신을 따라 명나라 북경을 가고자 뇌물을 주었다."
실제 역사 기록처럼 이방원의 18명의 아내 중 신빈 신씨에게 이렇게 사람들이 뇌물을 들고 찾아왔다는 것은 당시에도 신빈 신씨가 태종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음이 알려졌다는 대목이기도 하다.
2.2. 신빈 신씨의 이후 삶
1422년 태종이 죽자 신빈 신씨는 자신의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기록에 따르면 세종이 만류했음에도 절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으며 이후 비구니가 된 신빈 신씨가 태종을 위해 금으로 법화경을 쓰려 하자 세종이 이를 지원하였다. 당시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의 조정에서 불만이 있을 것을 세종도 알았으나 자신의 아버지를 위한 신빈 신씨의 태도에 감동하여 이를 지원 한 것이다.
2.3. 신빈 신씨의 죽음
1435년 세종 17년에 신빈 신씨는 숨을 거두었으며 세종은 예우를 갖춰 조문하고 수의를 하사했다. 그녀는 지금의 남양주에 묻혔으며 그의 첫째 아들 함녕군 역시 그녀의 무덤 밑에 묻혔다. 한편 고종대에 이르러 그녀는 신녕궁주라 불리다가 신빈으로 추증되었다.
사실 드라마 <원경>에서 등장하는 채령역이 신빈 신씨임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원경왕후를 모시던 몸종이라는 것 밖에는 없다. 태종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여성이었던것과는 달리 실제 역사 기록에서는 그녀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드라마 속 이야기에는 시청자들을 위한 허구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원경을 볼 때에는 채령과 같은 인물이 실제 역사에도 있었구나 정도만 정리하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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