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한중록의 저자 사도세자의 부인 그리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윤여시 2021. 10. 3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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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의 저자 사도세자의 부인 그리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상대적으로 궁궐 안의 여성이라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조선 역사에서 비운의 여인이라고 알려진 한 여인이 있다.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에 이르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적은 궁중의 일기 <한중록>을 남긴 그녀, 혜경궁 홍씨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혜빈 홍씨, 사도세자, 정조 가계도>

 

|혜경궁 홍씨 가계

 

혜경궁 홍씨는 예전에 방영되었던 MBC 드라마 <화정>의 두 주인공 홍주원과 정명공주의 자손이다. 정명공주가 선조의 딸이었으니 선조의 6대손이기도 하다. 1735년 한양에서 태어난 혜경궁 홍씨는 태어날 때부터 태몽이 검은 용이었다고 전해진다. 

 

거기다 당시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이 있는 풍산홍씨 집안은 영조대의 대표적인 노론 집안이었느니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는 금수저 집안이 바로 혜경궁 홍씨의 집안이었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8년 뒤인 1744년 혜경궁 홍씨는 10세의 나이로 당대 권세를 쥐고 있던 노론 집안의 배경을 입고 이후 사도세자라 불리는 세자의 아내 세자빈으로 간택 되었다. 그녀와 사도세자의 나이 이때 모두 10살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그녀가 세자빈으로 들어갈 때 들어온 혼수에 정명공주가 사용하는 물품들이 있었고, 그 중 병풍에는 혜경궁홍씨의 태몽에 나타난 흑룡이 수놓아져있었다고 전해진다.

 

<MBC 드라마 이산에서 혜경궁 홍씨 역을 맡은 견미리>

 

|혜경궁 홍씨의 궁중생활

 

10세의 어린 혜경궁 홍씨는 그 특유의 총명함으로 궁궐 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다. 그녀를 아꼈던 영조의 많은 공주들은 물론 시어머니와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영조가 사도세자를 멀리 하기 시작하면서 혜경궁 홍씨의 비극도 시작된다. 물론 아직도 영조가 사도세자를 멀리 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추측이 난무한 것이 사실이지만 정치적인 대립과 사도세자의 행동에 대한 영조의 곱지 않은 시선이 계속 되면서 영조는 어느덧 사도세자를 기피하는 것을 넘어 싫어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서 혜경궁 홍씨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이리저리 눈치만 봐야 했고 1755년 그나마 세자편이던 대비 김씨, 왕비 서씨마저 죽으면서 부자사이의 불화는 더욱 심해진다. 이러한 와중에 영조의 미움을 받던 사도세자는 그 행동마저 절제하지 못하면서 그 정신과 몸 모두가 피폐해져 갔고 마침내 1762년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이라는 믿지못할 형벌을 내린다. 하지만 이때 혜경궁 홍씨는 훗날 정조가 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남편의 잔혹한 죽음을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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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비밀의문에서 혜경궁 홍씨 역을 맡은 박은빈>

 

|정조 왕위에 오르다

 

영조는 죽은 사도세자를 폐서인으로 처리했고 남편을 잃은 혜경궁 홍씨 역시 더이상 세자빈이 아니었다. 이에 혜경궁 홍씨는 세자빈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고 궁궐 밖을 빠져나가 친정으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 했던 영조 역시 죄책감을 느꼈던지 세자로 복위 시키고 세자빈 홍씨를 다시 궁궐로 불러들였다.


이에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아들이자 세손인 이산(정조)를 지키고자 영조의 마음에 섭섭함 대신 '성상의 은혜로 우리 모자가 살아 있습니다'라며 감사함을 표했고 이러한 노력 때문이었을까 정조 역시 영조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게 된다. 이후 혜경궁 홍씨의 시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선희궁이 세상을 떠났고 영조가 죽기전 12년 동안 무수한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위해 숨죽이며 살았던 혜경궁 홍씨는 마침내 빛을 보게 된다.

 

1776년 영조의 뒤를 이어 마침내 세손 이산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정조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극진히 대한다.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남편인 사도세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 한들 왕대비라 불리지 못했다. 더군다나 정조는 죽은 효장세자로 아들로 입적해 있었을뿐 아니라 혜경궁홍씨보다 10살이나 어렸지만 영조의 부인으로 궁에 있는 정순왕후 김씨가 왕대비자리에 있었다. 해서 정조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궁이라는 칭호를 주어 조금이라도 더 대우를 해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혜빈 홍씨는 혜경궁 홍씨로 불리게 되었다. 

 

혜경궁이 환갑이 되던 해에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해 떠나는 수원 행차를 진행해서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 묘에 갈 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자신의 남편 묘에 33년만에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었다.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 대한 정조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795년 혜경궁 홍씨는 일종의 회고록인 <한중록>을 저술하여 지금까지 궁중문학의 대표 작품이자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궁궐의 이야기들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정조의 사후 혜경궁 홍씨의 삶 - 순조 즉위

 

이제 행복만 있을 것 같은 혜경궁 홍씨의 삶은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죽고 그 아들 순조가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또 다른 시간을 맞는다. 이때부터 자신의 친정 풍산 홍씨와 경주 김씨가 대립하고 정순왕후가 어린 순조를 섭정하면서 자신의 친동생 홍낙임이 사사당했음에도 혜경궁 홍씨에씨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순조와 대비 효의왕후 (정조의 부인) 그리고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조차도 정순왕후의 눈치를 봐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조가 죽고 15년을 궁에서 더 살았던 혜경궁 홍씨는 81세의 나이로 눈을 감게 된다. 이후 순조가 헌경이라는 시호를 높였으며 고종대에 이르러 사도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되자 헌경왕후로 불리기도 했다. 사도세와 함께 지금의 화성 융릉에 묻혔으며 그 옆에는 정조와 효의왕후가 함께 묻힌 건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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