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고려

고려 개국 공신으로 남양홍씨의 중시조 홍유 장군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2. 8. 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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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개국 공신으로 남양홍씨의 중시조 홍유 장군 그는 누구인가

천년 제국 신라의 부패와 몰락은 후삼국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영웅호걸이 들고 일어났지만 결국 삼국을 통일한건 고려의 왕건이었다. 그러나 왕건 역시 이 삼한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신하들과 당시 지방 호족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중에서도 왕건을 보좌한 대표적인 고려 개국공신 중 한명인 장군 홍유 역시 우리가 알아야할 인물이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드라마 왕건에서 홍유

|홍유 -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왕으로 세우다

홍유(~936)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홍유는 지금의 경상도 의성 사람으로 고려사에는 홍술로 기록되어 있다. 홍유는 신라의 장수로 추측되는데 당시 신라 진성여왕의 부패한 정치와 권신들의 국정농단으로 이미 신라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각 지방호족들은 신라에 반기를 들고 독자세력화하고 곳곳에서 민란도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홍유 역시 신라에 반기를 든 세력에 가담했다. 이후 궁예의 휘하에 들어가 17년 동안 궁예를 왕으로 섬기며 장수로 활약하였고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우며 기마부대를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인 마군대장에 오른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궁예의 포악성은 날로 심해지며 덕을 잃었고 공포정치로 나라를 위태하게 한다. 이에 홍유는 복지겸, 신숭겸, 배현경 등과 모의하여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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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 -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다 

왕건을 왕으로 옹립하는데 큰 역할을 한 홍유는 개국 1등 공신이 된다. 고려 개국직후 왕건이 왕위에 오르자 고려 지방호족들은 왕건의 왕권 찬탈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데, 이때 청주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홍유는 진압군을 이끌고 청주반란을 수습하게 된다. 

 

이후 경상 북부지방의 안정을 위해 예산 등지에 유민을 유치하는 일을 해내어 그 공적을 받아 종 1품 대상에 오른다. 사실 홍유는 용맹하기만 한 장수가 아니라 무장출신임에도 언변과 논리가 뛰어나 왕건을 곧잘 설득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홍유 -  자신의 딸이 왕건의 부인이 되다

홍유에 대한 왕건의 신뢰도 높아서 홍유는 경상 북부지역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인물이라 판단하고 의성의 호족장으로 홍유를 대우한다. 또한 정권 안정차 당시의 유력한 호족들과 혼인관계를 통해 왕권을 안정시킨 왕건은 홍유의 딸을 제 26번째 아내로 맞이한다. 그녀가 바로 의성부원군부인 홍씨인데 왕건의 25번째 아들 의성부원대군을 낳게 된다. 

|홍유의 죽음

이후 936년 후백제 신검과 마지막 전투였던 일리천 전투에도 출전해 승리를 함께한 홍유는 그해에 천수를 누리고 죽게 된다. 평생을 전장을 누빈 홍유는 정작 삼국통일의 기쁨을 오랫동안 느끼지는 못했다. 왕건은 죽은 홍유에게 '충렬'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994년(성종 13년) 배현경, 복지겸, 신숭겸, 유금필과 함께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유의 자손은 훗날 고려가 몰락할 때 그 역사에 등장하는데 바로 공민왕을 시해한 홍륜이 그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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