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고려

홍인방은 실존인물? 고려말 간신 홍인방의 모티브 염흥방은 누구인가?

윤여시 2022. 8. 3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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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방은 실존인물? 고려말 간신 홍인방의 모티브 염흥방은 누구인가?

드라마 육룡이나르샤에서 삼한제일검 길태미의 사돈으로 고려말의 간신 중 한명으로 등장하는 홍인방은 실존인물인 염흥방에서 나온 인물이다. 몰락해 가는 고려 조정속에서 간신 중 한명으로 기록되고 있는 염흥방은 과연 누구이며 실제 역사속에서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드라마 육룡이나르샤에서 홍인방(염흥방) 역을 맡은 전도민

|염흥방 고려왕조를 위해 일하다

정확히 염흥방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염흥방은 파주 염씨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곡성부원군 염제신의 아들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공민왕의 제5비였던 신비 염씨가 누나였기 때문에 나름 집안이 빵빵했다 할 수 있겠다. 그가 처음 고려사에 등장한 것은 1357년 4월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면서부터이다. 염흥방은 과거 장원급제 이후 나름 고려 왕조를 위해 공을 세웠던 인물이었다. 

1362년 홍건적 격파와 개경 수복에 일조를 하였고 1367년 지금의 국정원 역할격인 밀직부사와 1374년 도병마사로 최영과 함께 제주 목호의 난을 진압하는 등 나름의 공적과 능력을 인정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우왕 즉위 후 권문세족인 이인임이 당시 망해가는 북원 세력의 사신을 맞이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다가 이인임에게 미움을 사 유배길을 떠난다. 

 

정리하면 학문과 능력에 뛰어났던 인물이자 나름 정세를 파악하고 당시 조정을 잡고 있는 간신 이인임과 권문세족의 반대에서 개혁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드라마 정도전 속 염흥방

|염흥방, 이인임 밑에서 간신이 되다

귀양을 떠난 염흥방은 이때부터 완전히 바뀌어 이인임 그리고 임견미(육룡이나르샤 임견미)등 당시 권력을 잡고 있는 귀족들과 결탁하게 된다. 특히 임견미와 염흥방의 자녀들은 혼인을 하여 사돈지간이 되며 그 위세는 그야말로 대단했으며 서성군에 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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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흥방은 가장 먼저 매관매직으로 자신의 재산을 불렸고 수많은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아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도록 만들었다. 특히 그는 노비들을 많이 불려 세를 과시 했는데 좋은 땅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비들을 몽둥이를 들게 하여 보내어 정당한 땅 주인이어도 마구잡이로 폭행하고 땅을 빼았았다.   

 

추후에는 이인임 역시 염흥방과 임견미를 컨트롤을 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를 정도로 염흥방은 막강한 세력을 지니게 된다. 

|염흥방, 조반의 토지사건으로 몰락하다 

온갖 위세를 떨며 나라를 망치던 염흥방과 그 일당은 조반의 토지 사건으로 몰락하게 된다. 

 

염흥방의 가노들은 노비 주제에 자신들의 주인만 믿고 포악한 행위를 일삼았는데 염흥방 가노 중 한명인 이광이란 자가 다짜고자 전 밀직부사이자 대대로 가문의 위세가 대단했던 조반의 땅을 빼았는다. 

 

이에 조반이 염흥방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땅을 겨우 돌려 받았지만, 이광은 이에 멈추지 않고 다시 조반의 땅을 강탈하고 모욕을 준다. 이에 조반은 참으려 했지만 노비인 이광의 포악한 행위와 모욕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병을 데리고 가서 이광을 죽이고 집을 불태운다. 

 

여기에 조반은 더 나아가 염흥방의 포악한 행위를 조정에 알리기 위해 개경으로 향했는데 이를 안 염흥방이 조반이 역모를 꾀했다며 우왕에게 무고를 하며 조반을 체포하게끔 한다. 이후 염흥방은 고문을 하며 조반의 반역죄를 만들어내려 했지만 실상을 다아는 관료들과 우왕은 염흥방의 뻔뻔한 행동에 치를 떨게 되고, 우왕은 최영 장군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이후 우왕의 명을 받은 최영과 이성계는 조반을 풀어주고 위로 하였으며 염흥방을 옥에 가두고 임견미를 비롯한 권문세족과 그 일당들을 모조리 일망타진한다. 이로 인해 염흥방, 임견미를 비롯한 권문세족들이 몰살을 당하였으며 염흥방의 가노들 1천여명도 모두 처형당한다. 

 

조반의 토지사건이 오히려 염흥방과 간신 세력들을 축출하는데 큰 명분으로 작용한 것이다. 

|안동지역과 염흥방의 일화 

염흥방의 세력이 있었던 지금의 안동에는 염흥방을 신으로 모시는 성황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에 조선의 이조판서까지 지낸 김진(1500~1580)이 고려의 간신을 신이라 모시는 이 성황당을 부수고 백성들을 현혹하는 무당들을 내쫒아 버렸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라는 지명 역시 염흥방과 관련이 있다. 염흥방의 세력이 몰락할 때 고려 조정에서 관군을 보내 안동에 자리잡고 있는 염흥방의 사병들을 모조리 죽였는데 그때부터 이곳을 망지내라 불렀다가 이후 망천으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안동은 염흥방의 별장이 있던 곳이며 그를 신으로 삼은 성황당까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조선 중기까지 염흥방의 위세가 어느정도 지역에 남아 있던 것으로 보인다. 


여튼 고려말 간신 중 한명이었던 염흥방은 지금까지 여말선초 고려 몰락의 상징이자 부패의 상징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으며 역사속에서 권세가들이 자신의 힘을 잘못 과시하며 백성을 강탈하면 어떻게 기록 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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