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천재로 불렸던 인물, 후백제의 책사 천재 최승우 그는 누구인가?
모든 나라가 흥망성쇠가 있다고 하지만, 천년 역사를 가진 신라의 몰락은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신라의 몰락과 함께 일어난 장군 견훤은 지금의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며 옛 백제의 이름을 내세우고 나라를 세우니 바로 후백제이다. 이 후백제가 세워질 때 견훤의 책사로서 삼국시대 천재 최씨 3인방 중 하나인 최승우가 합류하니 가히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최승우 그는 과연 누구일까?
|최승우의 출생과 성장
최승우는 그 출생과 사망이 언제인지 베일에 가려 있는 인물이다. 다만 당시 통일신라의 천재 최씨 3명중 한명으로 최치원, 최언위와 더불어 이름이 났던 6두품 계급의 지식인이었다.
최승우가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진성여왕 4년 890년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3년만에 예부시랑 양섭 밑에서 공부하여 당시 외국인들의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급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치원이 7년에 당나라의 과거에 붙은 것 치고는 상당히 빠른 합격이라 할 수 있겠다.
이후 최승우가 언제 당나라에서 신라로 넘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0년뒤인 900년 이후일 것이라 예상한다.
그 이유는 조선 서거정(1420~1488)이 지은 <동문선>이라는 책에서 최승우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문선>은 삼국시대 후기부터 고려와 조선초기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시문을 모은 책인데, 바로 이책에 최승우가 당나라 말기 관리들에게 주는 형식의 시가 담겨져 있다.
이는 최승우가 그들이 당나라에 있을 때 접촉했던 것을 뜻하는데, 그 관리들이 재상을 비롯해 고관과 명망 있는 사람들이기에 최승우의 당시 인맥과 식견 그리고 당나라에서 활동한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최승우 후백제 견훤에게 합류하다
최승우가 언제 후백제의 견훤에게 합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최치원, 최언위처럼 망해가는 신라에는 몸을 의탁하지 않고 견훤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신라를 찾았을 때 견훤의 후백제가 자리를 잡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가 후백제로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최승우의 그다음 기록이 927년 행적이기 때문이다.
927년 왕건이 겨우 목숨만 부지했을 정도로 완벽한 패배를 당했던 공산 전투 이후 견훤은 왕건에게 협박하는 국서를 보내도록 했고 이 국서를 최승우가 쓰게 된다. 이 국서는 <대견훤기고려왕서>로 대표 문구는 '내 활을 평양성의 문루에 걸고 내 말에게는 대동강의 물을 마시게 할 것이다'이다. 이는 고사성어와 옛 역사를 유려하게 써내려가며 후백제에게 명분이 있고 당시 고려의 왕건은 몰락할 것임을 말하는 후백제의 강성함과 자신감을 보여준 글이었다. 이 내용이 얼마나 명문인지 앞서 말한 동문선, 삼국사기, 고려사에 모두 실려 있을 정도다.
생각해봐라 고려를 까는 내용인데 이 내용이 고려사와 삼국사기는 물론 조선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니 그 문장이 명문이지 않으면 이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당시 고려에서는 이 문구를 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3최였던 최언위가 답을 해 백제로 보냈다고 하니 왕건의 심기를 엄청나게 건드린 격서라 할 수 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최승우의 문장력이 엄청 났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최승우의 최후
그의 출생일이 밝혀져 있지 않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확실치는 않다. 그는 935년 음력 3월 완산주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때는 후백제에서 견훤의 장남인 신검이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자 견훤의 4남인 금강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키며 왕위를 찬탈한 정변이 일어난 때였다.
최승우의 저술서로는 <호본집> 5권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 전하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삼국사기와 동문선에서 전하는 10수의 7언율시 등이 있다. 그의 죽음에 대한 내용도 기록도 자세히 남아 있지는 않는데 이는 패망한 후백제의 역사와 함께 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당시 신라와 당나라에서 꽤 이름을 날린 인물이었으며, 그의 시와 문장이 후백제의 적이었던 고려에까지 이어져 조선까지 남겨졌다는 것은 얼마나 뛰어난 인물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어쩌면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할 때, 능력에 비해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안타까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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