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한 명의 귀주대첩 승리의 고려 강민첨 장군
우리나라 역사에서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수많은 대첩들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규모를 뽑으라면 단연 귀주대첩을 뽑을 것이다. 그리고 이 귀주대첩 하면 떠오르는 인물 바로 강감찬 장군이다. 그런데, 이 강감찬 장군 말고도 함께 이름이 나오는 장군이 있으니 바로 진주 강씨의 강민첨 장군이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강민첨 장군의 출생과 2차 고려거란전쟁 참여
강민첨 장군은 고려 4대왕 광종 때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장군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처음에 벼슬길을 문과를 급제한 인물이다. 진주에서 인재를 양성하다 43세라는 늦은 나이에 1005년 처음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제 2차 거란침입때 평양에서 애수진장의 벼슬을 하고 있다가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서경을 지키고 있던 원종석은 짓쳐들어오는 거란 대군에 겁을 먹어 항복하려 했으나 강민첨은 항전파로서 통군녹사 조원과 함께 서경성을 지켜냈으며 이 시간 동안 현종은 무사히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몽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이로 인해 강민첨은 현종의 신임을 받고 조정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된다.
|동여진을 막아내다
현종 당시 고려는 거란뿐 아니라 동여진의 침입도 자주 막아야만 했다. 특히 그들은 배를 타고 동해안으로 돌아 들어와 약탈을 자행하고 백성들을 죽였는데, 이에 1012년 강민첨 장군은 현재 포항 장기현 일대로 수군을 이끌고 출정하여 동여진을 말끔히 박살낸다. 이때 강민흠 장군은 못이 돋아난 철갑선과 비슷한 과선을 이끌고 동여진을 격퇴한다.
그러고보면 그가 문과를 급제한 인물임에도 육지는 물론 수전까지 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강감찬과 함께 귀주에서 승리를 거두다
1018년 12월, 거란은 다시 한 번 1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3차 침입을 감행한다. 이에 고려에서는 강감찬 장군을 필두로 강민흠 장군을 부원수로 임명하여 21만 대군을 꾸려 이를 막게한다.
거란의 10만 대군이 짓쳐들어오자 강감찬 장군은 강민첨 장군을 '자주'라는 곳으로 급파하여 별동대 개념으로 활용하였고 이곳에서 거란군의 한 부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둔다. 이후 거란의 본대가 고려군의 기세에 밀려 퇴각을 결정하고 퇴각하자 강감찬 장군은 퇴각하는 적을 기다렸다가 10만의 거란군을 궤멸시킨다. 이후 강민첨 장군은 도망가는 거란군을 끝까지 쫓아 대승을 돕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것이 바로 귀주대첩이다.
|귀주대첩 이후 강민첨 장군 이야기
귀주대첩의 승리 후 1019년 강민첨 장군은 그 공을 인정 받아 공신 자리에 올랐으며 1020년 병부상서 겸 태자의 스승자리까지 오른다. 하지만 1021년 11월 59세의 나이로 별세하니 당시 조정에서는 3일 동안 조회도 열리지 않았고 현종은 이를 안타까워하며 문하시랑에 올리고 시호 은렬을 내렸다. 이후 강민첨은 진주강씨 은열공파의 파조가 된다.
그는 지금의 충남 예산에 묻혔으며 20년 후 1046년 삼한벽상공신은 물론 강감찬 장군과 함께 배향되었다.
강민첨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하동의 두양리 은행나무는 강민첨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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