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고려

고려 현종의 목숨을 수없이 구한 호위무사 지채문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3. 10. 12. 22:49
반응형

고려 현종의 목숨을 수없이 구한 호위무사 지채문 그는 누구인가?

강조의 난을 계기로 왕위에 오른 고려 8대왕 현종은 이를 빌미로 고려를 침략한 거란의 대군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거란은 침략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 서경을 넘어 개경을 향했고 이에 현종은 남쪽으로 몽진을 떠나게된다. 그리고 이때 현종과 함께 한 호위무사를 자처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지채문이다. 그는 누구인가? 

고려 현종의 몽진을 수행하는 지채문

|거란의 2차침입과 지채문

 

지채문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벼슬에 입문하게 된 것은 역사에 남아있지 않다. 지채문이 고려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거란의 2차 침입부터다. 

 

거란의 2차 침입을 하였을 때 지채문은 지금의 대령급인 중랑장의 자리에 있었다. 이때 지채문 역시 거란을 막고자 화주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강조가 이끄는 주력군이 통주 전투에서 그야말로 처참하게 패하면서 이내 서경까지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이에 현종은 급하게 지채문으로 하여금 서경 지원을 명한다. 

그러나 이때 서경을 지키고 있는 고려군은 이미 항복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는데 그 상황속에서 지채문은 어떻게든 항전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서경 유수 원종석은 이미 항복의 결심을 하고 사절을 보내는데 지채문은 서경에서 돌아가는 거란 사절들을 매복하고 있다가 죽이면서 서경이 어쩔 수 없이 싸울 수 밖에 없는 길로 만들어 버린다.

 

지채문, 탁사정 등이 서경에서 항전을 결심한 이후 거란과 대치상황에 접어든다. 이에 고려조정은 시간을 끌고자 항복 사절을 보냈는데, 성종은 냉큼 서경에 병력을 보냈다가 지채문의 군대에게 전멸한다. 이후 짓쳐들어온 거란군과 전투를 벌이며 승전을 올리기도 하였으나 다시 한 번 거란의 대군이 몰아 닥치자 패배하여 서경을 버리고 몸을 피한다.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지채문

|현종의 몽진길, 지채문은 호위무사가 되다

 

개경으로 복귀한 지채문과 탁사정 등이 서경과 거란군의 상황을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항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직 강감찬만이 이를 결사반대하며 현종의 몽진을 주장했고, 결국 현종은 남쪽으로의 피란길을 떠나게 된다. 이때 지채문이 현종의 호위를 맡겠다며 자청했고 현종 주위에 이미 남은 신하들이 몇 없던 상황에서 현종은 감격한다. 

현종이 개경을 떠날때 호위병력은 고작 50명이며 왕후와 후궁 그리고 지채문과 채충순 등 도저히 왕의 행렬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그래서일까 현종이 지금의 연천군에 이르렀을 때 병졸신분이었던 견영이라는 자가 무리를 모아 현종 일행을 위협하였으나 지채문이 활을 쏴 이를 물리쳤다. 이후 양주에 다다랐을 때는 호족 중 한명이 현종에게 '제 이름을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며 거드름을 떨쳤고 현종이 이를 무시하자 무리를 모아 현종을 위협한다. 

이에 지채문은 두 왕후를 북문으로 몰래 빠져나가게 하고 자신은 적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현종을 호위하고 탈출한다. 

 

반응형

 

|끝없는 위협 지채문은 현종을 포기 하지 않는다

 

지채문은 몽진 내내 불안해하고 우울한 현종을 달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지채문이 정찰을 떠나려 하자 수많은 신하들이 자신을 버리고 간 것을 목격한 현종은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지채문은 '임금을 저버린다면 하늘이 반드시 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느날은 몽진길에 논에 앉은 기러기떼를 본 지채문이 말을 내달려 기러기를 날린 후 활을 쏴 기러기 한마리를 잡는다. 이후 잡은 기러기를 현종에게 바치며 '활 잘 쏘는 제가 폐하를 지키고 있으니 무슨 걱정을 하십니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에 임금을 지키는 몇 안남은 호위병들을 포상하며 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그러나 현종에 대한 위험은 계속 도사리고 있었다. 전주에 이르렀을 때 전주 절도사 조용겸이란자가 무리를 끌고 현종을 겁박하자 지채문은 전각의 문을 굳게 닫고 호위한다. 이후 전주 땅이 후백제 견훤의 땅임을 언급하며 더 남쪽의 나주로 몽진길을 돌린다. 이처럼 지채문은 이렇게 현종의 몽진길동안 수없이 현종을 지켜낸 지채문은 현종에게 있어서만큼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은인이었다.
 

고려 2차 침입이 끝이나고 개경으로 돌아온 현종은 지채문에게 교지를 내리며 '지채문만이 나를 지키고 절개를 보여줬으니 어찌 그 공훈을 잊으리오'라며 감사함을 표했다고 한다. 이후 지채문은 1016년 우상시, 1026년 상장군에까지 이르렀다가 그해 죽는다. 1031년 현종의 아들 덕종이 즉위하면서 지채문을 1등공신으로 올린다. 


지채문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분명 고려거란전쟁에서 고려를 대표하는 영웅이었다. 만일 현종이 2차 침입에서 죽었다면 고려의 위대한 왕이라 평가 받는 현종의 전란 극복은 우리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채문이 보여준 그 절개와 용맹함 그리고 충성심은 분명 우리가 기억해야할 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