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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경호처장 권력을 쥐다! 야인시대 곽영주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4. 5. 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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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경호처장 권력을 쥐다! 야인시대 곽영주 그는 누구인가? 

경호원의 주요임무는 자신의 목숨을 다해 VIP를 여러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호원이 자신이 지키는 VIP의 권력을 탐한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이같은 일이 바로 이승만 정권 시절에 있었다. 그는 바로 당시 경무대 경호처장을 맡고 있던 곽영주였다. 곽영주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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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곽영주
드라마 야인시대의 곽영주

1. 곽영주. 경찰의 길로 들어서다 

1924년, 지금의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난 곽영주는 우리가 잘알고 있는 것처럼 훗날 정치깡패이자 서로 돕고 돕는 사이인 동대문파 두목 이정재와 동문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학창시절을 보내는데, 경성공립직업학교 기계과 졸업 후 일본 육군에 지원하여 입대한 이력이 있다.

 

그가 굳이 당시 전쟁이 한창중인 일제의 육군에 지원한 것은 당시 병력이 부족한 일제가 조선의 청년들을 징집하며 출세길의 기회를 준 것 때문이었는데, 이를 봐도 그거 어렸을때부터 이미 출세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튼 일제 군대에서 헌병 하사까지 복무한 그는 뜻하지 않게(?)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여튼 해방 이후 그는 수도경찰학교에 들어가 이를 수료하였고 경사로 근무하다가 1947년 10월 갑작스럽게 경무대(이승만 대통령이 집무를 보던 곳)의 경비 경찰로 복무하게 된다. 이후 우연히 이승만의 눈에 띄게 된 곽영주는 쭉쭉 진급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전쟁 중에도 이승만 옆에 있으며 1950년 경무대경찰서 경호대 경위를 시작, 1951년 경감, 1955년 치안국 총경 그리고 1956년에는 경무대경찰서 서장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경호책임자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야말로 엄청난 출세였고 그의 나이는 31세에 불과 했다. 

- 곽영주의 일화

경사 시절에 곽영주는 “총을 잘 쏘아 이 박사의 승용차를 에스코트하는 지프에 타고 집총하고 다니던 경호관이 되었고, 뛰어난 사격실력을 선보여 ‘명사수 곽경사’ 라는별명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때 이승만의 눈에 띈게 아닌가 싶다. 곽영주는 지금봐도 약간 쾌남 스타일인데다가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이승만을 아버지처럼 모셨을테니 이승만이 픽한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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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주 모습
4.19혁명 이후 구속당한 실제 곽영주 모습

2. 곽영주. 권력을 휘두르다 

곽영주는 지금의 대통령을 지키는 경호처장에 불과 했다. 오늘날 경호처장이 권력을 휘두르고 정치에 관여했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는가? 그러나 이당시 곽영주는 달랐다. 이승만 대통령의 문고리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 정치깡패 이정재를 키워주다

곽영주는 자신의 동향이자 어렸을적부터 인연이 있던 동대문 사단의 깡패 이정재의 뒤를 제대로 봐주었는데, 이 힘을 바탕으로 이정재는 당시 독재의 꿈을 키워가던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과의 인연을 갖게 되었다. 이후 이정재가 무슨 범죄를 저지를지라도 곽영주는 경찰을 통해 오히려 이정재를 보호하였고, 이정재는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과감하게 확장하며 정치깡패로서 온갖 패악질을 일삼게 된다. 

 

가령 누군가 경찰에 이정재를 신고하면, 그 신고한 사람을 잡아갈 정도로 곽영주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법이 무너진 것이다. 이를 통해 이정재의 동대문 일당은 이승만 정권유지를 지원하는 곽영주가 운영하는 정치적 테러단체로 변해버린다. 

- 행정부는 물론 군 진급심사에도 관여하다 

곽영주가 고작 깡패들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는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여 행정부의 인사권은 물론 군인의 진급에도 관여하기 시작하는데, 지금의 대통령경호실장이 지금의 행정부장관인 내무부장관에게 참견을 가하고 군대의 진급 심사에도 관여하여 군 내부에 이승만 정권을 옹호하는 세력을 만들고자 했다. 

- 부정축재와 횡령 의혹

권력이 향하는 길의 마지막은 역시나 돈이다. 곽영주는 자신의 권력을 통해 부를 부정으로 축재하기 시작한다. 선거자금 명목으로 제일모직에서 돈을 받아내고 자신의 형 곽영환을 통해 경무대 영업용 자동차 사업면허 넘버로 돈을 횡령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불법적으로 사설 비밀경찰을 조직해서 돈 많고 잘나가는 사람들의 뒤를 불법적으로 캐고 이를 통해 돈을 뜯는 행위를 했다는 의혹도 있다.

 

다만, 곽영주는 부정축재와 관련해서는 가족에게 말하길,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다고 말했다 하는데 사실은 알 수 없다. 

 

여튼 분명한 것은 권력자 곽영주의 모습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이승만과 이기붕 다음 서열인 ‘부부통령’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곽영주의 행동에 대해 많은 반감을 품었다는 것이다. 

 

이기붕과 곽영주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이기붕과 곽영주

3.  4.19혁명과 경무대 앞 발포사건 그리고 곽영주의 최후 

독재정권이 어디 오래가던가... 언제나 권력의 끝은 있는 법이다. 1960년 자유당 독재정권이 저지른 희대의 부정선거인 3.15부정선거가 일어나고 이를 규탄하는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4.19혁명이 일어난다. 

 

분노한 국민들은 이승만이 있는 경무대로 몰려가는데 이때 곽영주가 성난 국민들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무대 앞 발포사건이다. 이 발포에 대한 명령은 그가 훗날 사형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러고보면 훗날 5.18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발포 명령을 내린 사람이 있었음에도 끝까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것 자체만 봐도 이 발포에 대한 명령의 책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튼 이후 결국 평생 갈 것 같았던 이승만 정권은 4.19혁명으로 무너지고 이승만은 하야를 선언하고 하와이로 가버린다. 이에 곽영주는 곧바로 체포 된 후, 당시 장면 내각 하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는다. 

 

그러나 5.16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가 혁명재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열면서 곽영주, 당시 내무장관 홍진기(이건희의 장인, 이재용회장의 어머니 홍라희의 아버지) 등과 함께 사형을 선고 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홍진기는 사형직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나 곽영주는 그대로 사형이 집행된다. 이렇게 곽영주는 최인규(3.15부정선거까지 내무장관), 이정재, 임화수 등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지게된다. 그의 나이 불과 35세였다. 


이 세상에 영원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곽영주. 시대적 상황속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라 칭하며 마치 봉건제도의 왕처럼 대했으니, 그의 권력에 대한 사심을 떠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무지도 분명 그의 최후를 비참하게 한 한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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