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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션샤인 고애신 실존인물 독립운동가 윤희순 의사 무엇이 닮았을까?

윤여시 2024. 5. 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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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션샤인 고애신 실존인물 독립운동가 윤희순 의사 무엇이 닮았을까?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을 보면 여주인공 고애신은 일제가 조선을 삼키려던 순간, 조선팔도가 알아주는 양반가의 자제였지만 자신이 직접 총을 들고 독립운동을 하는 여인으로 나온다. 당시의 신분이나 성별을 고려했을 때, 그 자체로도 놀라운 일이기에 드라마기 때문에 가능한 인물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 있다. 바로 독립운동가 윤희순 의사다. 고애신과 윤희순 무엇이 닮았을까? 
 

고애신-윤희순-의사
윤희순 의사의 초상화

 

1. 윤희순의 출생과 성장배경'

윤희순은 해주윤씨로 그 집안은 인조반정 때 공신책봉된 공조판서 윤화평의 가문이었다. 윤희순은 집안의 장녀로 어렸을 때부터 활달하고 씩씩하였는데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매사 긍정적이며 효심이 지극하였다고 전한다. (극중 고애신의 양반가 가문의 딸로 성격 등도 매우 닮은 듯 보인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선비정신과 학문을 중요시하였으며 특히 윤희순의 할아버지 역시 책읽기를 좋아하고 대의를 숭상하였으며 그 아버지 역시 학문에 조예가 있었다. 때문에 당시의 생각과는 달리 집안 자체가 여성의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윤희순 역시 학문을 배우고 세상 보는 눈을 넓힐 수 있었다. (극중 고애신의 할아버지가 올바른 것을 중시하는 참선비로 나온다는 점이 비슷하다.)

- 윤희순의 혼인 

윤희순이 나라를 위한 걱정과 뜨거운 마음이 더 강해지게 된 계기는 혼인이다. 윤희순은 16살의 나이로 1875년 춘천 지역에서 존경받는 고흥유씨 가문의 유제원가 혼인을 한다. 

그녀의 남편 유제원 역시 어렸을때부터 총명하기로 이름이 자자했고 학문이 높은 큰 선비였다. 한편 윤희순의 시댁이 있는 강원도 춘천지역은 당시 명망 있는 선비들이 많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특히 시아버지 유홍석은 이후 의병장으로 활동하는 유인석과 친척관계로 후에 유인석과 함께 의병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처럼 선비의식과 애국심이 강했던 그녀의 남편과 시댁의 영향이 윤희순이 본격적으로 의병운동에 참여하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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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희순 의병이되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주제로 한 을미개혁이 진행되자 이에 반발하는 의병봉기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에 춘천지역에서도 의병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윤희순의 시아버지인 유홍석이 춘천의 선비들과 함께 이소응을 의병대장으로 세우고 의병활동에 전면 나서게 된다. 

그러자 윤희순은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시아버지 유홍석의 의병출정을 함께 하려고 한다. 이때 그녀의 나이 36살이자 결혼 20년만에 낳은 큰아들이 돌도 안되었을때의 일이다. 

첫 출전에서는 시아버지의 강력한 만류로 잠시 접었으나 두번째 의병 출전에서 그녀는 시아버지의 의병봉기 격문을 옮겨 적는가하면 수많은 의병가사를 직접 지으며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시켰으며 자신이 먹을 곡식들을 모조리 의병 군량미로 마련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었다. 당시 독립운동은 남성이 하는 것이고 여성들은 집안일을 돌봐야 한다는 의식들이 팽배했는데 윤희순은 직접 춘천지역의 여성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촉구하였고 <안사람 의병가>라는 노래를 지어 여성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이끌어냈다. 

 

고애신
드라마 &lt;미스터션샤인&gt; 고애

3. 윤희순 무기를 만들다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조선의 입장이 담긴 3명의 특사를 보낸 헤이그밀사사건을 명분으로 삼아 일제는 고종의 퇴의는 물론 우리나라의 군대에 해산명령을 내린다. 이에 반발한 한국 군대와 백성들의 들고 일어나니 이것이 바로 정미의병이다. 

그리고 이때도 역시 춘천지역에서는 시아버지 유홍석이 동지들과 6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제와 맞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윤희숙은 군수물자를 지원하기 위하여 지역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고 하나둘 모인 군자금을 통해 놋쇠와 구리를 구입하고 무기와 화약을 제조, 공급하는 화약제조소 운영에 직접 참여한다. 

이를 통해 600명의 의병에게 무기와 탄약, 식량 등을 지급하였는고 다시 한 번 여성의병대를 조직하여 직간접적으로 독립의병활동에 나선다. 이때도 윤희순이 지은 의병가는 당시 지역의 의병들의 사기진작에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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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윤희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국내에서의 의병활동은 일제가 조선병합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고 의병탄압을 집요하기 시작하면서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이는 춘천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시아버지 유홍석 역시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국내에서 의병활동이 힘들게 되자 자결을 선택하려 하지만 윤희순을 포함한 가족들이 훗날을 도모하자며 만주행을 결심한다. 

당시 윤희순 일가와 춘천지역의 독립군들은 몰래 압록강을 건너 간도땅에 정착했으며 1911년부터 윤희순은 간도 땅에서도 독립운동을 진행한다.

윤희순은 간도땅에서는 독립운동을 함께할 인재 양성에 초점을 두고 간도지역의 조선인들의 독립의식 고취와 군수물자 등을 모금하였다. 또한 노학당을 창설하여 직접 교장으로 취임하고 운영하였으며 1915년 폐교까지 50명 이상의 항일 독립운동 인재를 양성해냈다.    

그러나 시아버지 유홍석이 1913년 사망하고 시동생 유제열이 사망했으며 1915년 남편 유제원도 사망하였고 의병장 유인석 역시 그해 사망하면서 노학당을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고 지금의 랴오닝성 푸순 지방으로 아들과 함께 이사를 떠난다. 

 

윤희순 의사 묘
윤희순 의사 묘

 

5. 윤희순 조선독립단 출범과 함께하다 

이제 윤희순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는 여기서도 독립운동을한다. 푸순 지역을 돌아다니며 중국, 조선인들에게 항일독립운동의 선전활동을 진행하였는데 이때 중국인들도 함께 독립운동의 내용을 설파한 것은 미래에 독립운동을 중국에서 하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선견지명이 있었더 것이다.

윤희순은 이제 자신의 아들 돈상, 민상과 함께 한중연합조직인 조선독립단 창설을 위해 만주지역 곳곳에 퍼져 있는 항일독립운동가들을 모으며 마침내 1920년 항일독립운동가 180명과 함께하는 독립조직 조선독립단을 창설한다. 

조선독립단에서는 인재양성은 물론 군사훈련 등을 진행했고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가족들을 부대로 만들어 통신연락, 군수품 모집활동, 군사훈련 등을 전개한다. 이후 1930년에 들어서며 조선독립단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에 맞서 한중연합부대를 조직하고 무장투쟁까지 벌인다. 

6. 윤희순 세상을 떠나다 

윤희순이 이끌던 조선독립단 역시 1934년 이후 밀정의 밀고 등으로 큰 피해를 입기 시작하며 위축된다. 이때 그녀의 나이가 70대 중반이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1935년 6월 큰아들 유돈상이 조선독립단 청년들에게 강의 후 처갓집으로 이동했는데 밀정의 보고를 받은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당하고 만다. 푸순감옥으로 끌려간 유돈상이 고문을 받고 한달 후, 출옥하지만 후유증으로 끝내 순국한다. 

이에 윤희순은 자신과 함께한 모든 가족들이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자 이국 땅 요동에서 자손을 위한 글과 자신의 일생록을 남기고 그해 8월 순국한다. 

우리 정부는 1986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으며, 1991년 건국훈장애족장으로 승격한다. 이후 세월이 흘러 1994년 그의 손자 유연익 광복회 강원지부장에 의해 유해가 발굴되어 그리던 춘천 땅으로 이장되었다.  


미스터션샤인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극중 고애신과 윤희순 의사를 단연 비교할 수 없다. 윤희순 여사는 우리나라의 최초 의병장으로 애국계몽운동, 항일무장투쟁은 물론 심지어 무기를 만들고 보급활동에 연락책까지 맡는다... 독립운동을 외치며 3대에 걸쳐 살아온분이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야 했고 자신들의 가족을 독립운동을 하다가 모두 잃은채, 머나먼 타지에서 눈을 감았지만 그녀는 한평생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외치며 올바른 것을 위해 싸워 왔다.
 
다시한번 윤희순 의사의 경이롭고도 놀라운 의지와 불굴의 행동에 지금 대한민국 땅을 밟고 살아가는 후손으로서 고개를 숙이고 가슴 깊이 그 이름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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