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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 사위에서 고려의 장인으로 순천 박씨 시조 후백제 박영규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4. 4. 1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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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 사위에서 고려의 장인으로 순천 박씨 시조 후백제  박영규 그는 누구인가?

동서의 역사를 볼 때, 멸망 당한 왕조에서 살아남은 왕실의 가족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이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여기 후백제가 멸망했음에도 후백제 왕실의 딸과 사위가 다시 새로운 왕조 고려 왕의 장인어른이 된 사례가 있다. 바로 순천박씨 시조 후백제 박영규이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고려 박영규
드라마 태조왕건에서 후백제 박영규

 

1. 박영규는 순천의 대표 호족?

지금의 순천 여수 지역의 옛 이름인 승평군의 호족이었던 박영규는 당시 순천 여수의 위치가 해상 무역의 중요 거점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를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기반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한 그는 지금의 순천 해룡산성을 보수 증축하고 이를 기점으로 지역을 장악한 인물이었다. (승평지 - 순천의 역사서 참조)

 

2. 박영규, 후백제 견훤을 돕다 

박영규가 순천 지방을 장악한 호족 중 한명이었지만 신라의 신분제도 상에서 사실 그의 신분은 지방인 중 한명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박영규는 자신의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인물을 돕게 되는데, 그가 바로 견훤이다. 견훤이 지금의 호남지방의 지역을 지키는 장수 중 한명으로 왔을 때부터 쭉 지켜보았던 박영규는 견훤이 군사를 일으키자 이를 돕는 것은 물론 전라남도 동부지역의 호족들과의 연계를 도우면서 후백제라는 후삼국을 대표하는 나라의 창업을 돕게 된다. 

이러한 인연을 인정 받아 견훤은 자신의 딸을 박영규와 혼인시키며 박영규는 명실상부 왕의 사위로서 도약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견훤 역시 당시 연고도 없는 호남지방의 호족들을 다스리고 해상무역의 중심이었던 순천 지방의 담당자였던 박영규와 가족관계가 되면서 왕권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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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부인 견씨
태조왕건에서 등장한 견훤의 딸이자 박영규의 부인 국대부인 견씨

 

3. 박영규, 견훤을 탈출시켜 고려에 투항하다 

그러나 모든 나라의 시작이 있으면 몰락이 있는 법..

 

익히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이 이복동생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때 신검은 쿠데타에 성공하고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가뒀는데, 이때 견훤을 탈출시켜 고려로 투항하게 도운 인물이 바로 사위 박영규였다. 또한 박영규는 936년 후백제가 멸망하기 전 고려로 투항하니 정말 제대로 대세를 읽고 잘 갈아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여튼 신검 후백제는 결국 멸망하고 고려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되었으며 박영규 역시 자신의 거점인 순천 지방의 대호족이라는 신분을 기반으로 고려의 중신으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된다.  

4. 박영규, 고려의 장인어른이 되다 

고려로 투항한 뒤, 삼국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왕건에게 박영규는 귀인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좌승의 벼슬은 물론 1,000결의 전답을 받았으며 그의 두 아들 역시 벼슬을 받아 고려의 조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때부터 박영규의 집안은 고려 초 중앙정치에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태조 왕건의 혼인을 통한 호족 통합정책과 더불어 박영규는 자신의 세 딸을 모두 고려 왕실과 혼인시키는데 성공(?)한다. 태조 왕건에게 한 명, 그리고 왕건의 아들이자 고려 3대 왕이 되는 정종에게도 무려 2명의 딸을 혼인시킨다. 이를 통해 왕건은 고려 개경과 먼 지방인 순천 지방의 안전을 도모하고 옛 후백제 지역의 민심을 다잡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박영규 가문 역시 이를 계기로 고려를 대표하는 가문이 되었으며 정종이 고려 3대 왕으로 오르면서 후백제의 사위에서 고려의 장인의 가문이 되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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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박영규, 가문의 몰락 

전성기를 맞았던 박영규의 가문도 얼마 가지 못해 위기를 겪기 된다. 정종의 동생이자 고려의 4대 왕 광종은 즉위하자마자 중앙집권화를 꾀하고 이른바 대호족에 대한 숙청 작업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몰락에 가까운 위기를 겪는다.

 

박영규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순천지방에서는 후에 산신으로 추앙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후 박영규는 오늘날 순천박씨의 중시조가 되었으며, 지금도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 가문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어쩌면 가장 역동적인 순간 중 하나였던 후삼국시대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두 왕조에서 중임을 받은 박영규, 그의 정치적 군사적 혜안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가문인 순천 박씨 가문의 모든 후손들 역시 우리나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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