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지금의 완도 땅에 거점을 마련하고, 해상 무역을 진두지휘하며 신라의 이름을 알렸던 해상왕 장보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암살로 끝을 맺는 장보고의 최후에 대해서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장보고를 암살한 염장(염문)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가? 오늘은 장보고를 죽인 암살자 염장(염문)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1. 역사속 염장(염문)의 등장
1.1 염장? 염문? 무엇이 맞을까?
먼저 염장(염문)을 알기 위해서는 그 이름을 잘 알아야 한다. 장보고의 드라마로 잘 알려진 <해신>에서 염장은 염문으로 나오고 실제로 그렇게 혼용되고 있다. 이는 한자 사용에 있어 염장의 어른장 丈과 유사한 글문 文이 착오를 일으켜 두 이름이 혼용되고 있으며 실제로는 염장이라 불리는게 맞다.
1.2 염장의 역사속 등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염장을 장보고를 죽인 그 한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로 알겠지만 염장이 역사속에 등장한 것은 그보다 이전이다. 다만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당시 신라 왕실의 상황을 아는 것이 좋다.
신라 후기의 왕을 향한 권력다툼은 절정에 달하고 있었는데 형제고 친척이고 할 것 없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특히 42대 흥덕왕이 죽은 뒤, 왕위를 놓고 왕족이자 삼촌 조카지간인 김균정과 김제륭이 맞붙는다. 이때 김균정을 지지했던 김양 밑에 장수로 바로 염장이 있었다. 그런데 김양이 김균정을 지지하며 군을 일으켜 김제륭과 맞붙었으나 패배하고 김균정은 죽게 되고 김양은 도망치게 된다.
이때 김균정에게는 아들 김우징이 있었는데 김우징은 아버지 김균정이 패배하자 청해진 장보고에게 피신을 해있었고 김양 역시 청해진으로 향하게 된다. 이때 염장 역시 김양의 휘하 장수로 함께 청해진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쟁에서 승리한 김제륭은 왕위에 올랐고 이가 바로 43대 희강왕이다. 그런데 이 희강왕 역시 김균정을 무찌르는데 공을 세운 왕족 김명에게 죽임을 당하고 김명이 왕위에 오르니 44대 민애왕이다. 그야말로 친척끼리 죽고 죽이는 혈투였던 것이다.
1.3 민애왕을 정벌하기 위해 장보고 군에 합류하다
민애왕이 왕위를 찬탈하자 이를 명분으로 장보고에게 기대어 있던 김우징은 장보고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청해진의 장보고 군은 마침내 민애왕을 공격한다. 이때 염장 역시 김양의 휘하에 있었으므로 장보고의 친구 정년 등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출정한다.
이후 염장은 장보고의 군대의 선봉장을 맡으며 지금의 대구에서 민애왕의 군대를 완벽하게 박살내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장보고의 강력한 군대와 이러한 승전보가 속속 들려오면서 마침내 민애왕을 몰아내고 김우징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45대 신무왕이다.
2. 염장, 간신과 암살자의 오명을 쓰다
2.1 장보고와 신무왕의 약속
장보고가 신무왕을 왕위에 올린 후, 신무왕은 자신의 아들이자 후에 왕위를 물려 받을 태자를 장보고의 딸과 혼인시키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런데 신무왕이 왕위에 오른지 얼마 안되어 죽게 되고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46대 문성왕이다.
문성왕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고 아버지의 약속대로 장보고의 딸을 문성왕의 두번째 왕비로 들여야 했는데 이를 거부하면서 장보고의 청해진 세력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2.2 염장의 장보고 암살
마침내 장보고는 자신의 딸과의 혼인 약속을 파했다는 이유로 신라 조정을 향해 청해진에서 군을 일으킨다.(한편에서는 이 같은 장보고의 반란이 신라 조정에서 장보고 제거를 위해 지어낸 말이라는 설도 있다.) 여튼 장보고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신라 조정은 두려움에 떤다.
그런데 이때 나선 이가 바로 염장이다. 염장은 "자신이 군사 한 명도 잃지 않고 장보고를 없애겠다"라며 왕 앞에 나선다. 문성왕은 더 없이 반가워하며 염장을 장보고에게 보낸다.
그리고 <삼국유사>에서는 염장이 청해진에서 장보고를 암살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염장은 "신라의 왕에게 원한이 있어 당신에게 투항하고자 왔다"고 말하자
장보고는 "내 딸을 폐하는데 있어 놓고 어찌 나를 보려고 왔느냐"라고 분노했다.
그러자 염장은 " 자신은 그러한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의심하지 마소서"라고 거짓 투항을 하자 장보고가 의심을 풀었고 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러자 장보고가 술취한 틈을 타 염장이 장보고의 검을 빼어 암살한다.
이후 염장은 경주로 돌아가 아찬이라는 벼슬자리를 받으니 장보고의 허무한 죽음이었다. 당시 경주 입장에서는 제일 위험세력인 장보고를 죽인 엄청난 공을 세웠음에도 염장에게 공신은 커녕 아찬(6두품)자리나 주는 것을 봐서는 얼마나 신분계급을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튼 염장은 장보고가 없는 청해진의 잔당 세력을 숙청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염장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역사속 기록을 보았을 때 염장은 단순한 암살자라기 보다는 나름의 군대 통솔력 등을 지닌 장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희대의 영웅인 장보고를 암살했다는 점은 그의 이름이 영원히 역사속에 오명으로 남기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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